경우의 수로 전락한 '황금세대', 한국 축구에 필요한 건 '백의종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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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다는 '황금세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결국 '경우의 수'의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조별리그 2차전까지 마친 뒤 스포츠 데이터 분석업체 옵타(Opta) 슈퍼컴퓨터는 한국의 32강 진출 확률을 91.08%로 예측했다. 그러나 마지막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 패배로 그 우위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한국이 32강에 진출하려면 자력이 아닌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에 따른 경우의 수를 기다려야 한다.
첫 경기 체코전 승리 직후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많은 축구 팬들은 샴페인을 먼저 터뜨리며 무난한 32강 진출은 물론, 16강 이상의 성적까지 기대했다. 그러나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이어 무너지면서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축구 커뮤니티와 여론은 들끓었고 대한축구협회와 코칭스태프를 향한 비판도 거세졌다. 그런데도 홍명보 감독의 해명은 많은 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이 보여준 것은 불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아시아의 호랑이'라 부르며 2002년 히딩크 매직이 만든 4강 신화를 당연한 일처럼 여기고, 스스로 축구 강국이라 자부해 왔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과 같은 슈퍼스타의 탄생이 우연이 아닌, 우리의 고도화된 축구 시스템이 만든 산물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히딩크 감독이 꼬집었던 상하 구조가 확실한 보수적인 한국 축구 생태계에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생존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 운영 시스템의 허점과 독단적 리더십이 만든 공백은 선수 개인의 재능과 헌신, 투혼으로 가까스로 메워져 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오랫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결국 이번 월드컵에서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이는 결코 선수 개인의 실력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선수들은 잘못된 시스템이 만들어낸 구조적 실패를 가장 앞에서 떠안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누구보다 큰 대가를 치른 피해자들일 뿐이다.
임진왜란 당시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사실상 전멸했다. 해전보다 육전을 강조하며 전략 없이 전투에 임한 장수의 판단 오류라 역사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불행과 실패를 앞에 두고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며 선조 대왕에게 절망 대신 희망을 담은 편지를 전했고,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명량대첩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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