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조사'에 잠정조치 최대로?…강화된 스토킹대응, 정작 현장은
"잠정조치를 1호부터 4호까지 다 신청하다 보면요.
정말 위험한 사건과 사람에게 선택과 집중을 못 하는 경우도 생겨요."
스토킹 등 관계성범죄가 최근 잇따르면서 경찰 수사 대응 역시 전방위로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무분별하게 세부 지침이 하달되는 등 정해진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일선 현장에선 혼란이 일고 있다.
"조사 밀려선 안돼" 업무 과중에 공황까지2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3월 남양주 스토킹 피해자 살해사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관계 당국의 엄정 대응을 지시하자, 수사 주체인 경찰은 스토킹·교제폭력 등 이른바 '관계성범죄'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의 경우, 관계성범죄 사건이 접수되면 당일 즉시 조사 원칙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냈다. '당일 원칙'이 적용되면서 대다수 여성청소년과 경찰관은 하루 4~5건 이상씩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남부지역 한 경찰 관계자는 "4교대로 근무를 하지만 사건이 많고 수사는 최우선으로 해야 하다 보니 비번인 날에도 나와서 밀린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내 한 경찰서의 피해자보호관(APO) 중 한 명은 업무 스트레스로 과호흡 증상을 보여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담당 사건을 미룰 수 없어 다음 날 바로 업무에 복귀해야 했다.
통일되지 않은 세부지침이 계속 추가되는 것도 문제다. 기존 지침 하달 이후 또 다른 지침을 계속 내리다 보니 일선에서 혼란을 겪는 것. 경찰 관계자는 "지침을 보면 수사 강조 지시가 '철저 수사', '3중 체크' 이런 식으로 계속 내려오는데 너무 자주 바뀐다"며 "기존 업무에 지침이 자꾸 추가되고 또 추가되다 보니 최종 지시사항이 뭔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전에는 범죄 성립 여부만 판단해 송치하면 됐지만, 지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해자의 위험성까지 예측해 조치 수위를 판단해야 하는 부담이 더해졌다"며 "피의자 위험성 체크리스트 한 장을 작성하는 데도 예전엔 10분이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20~30분씩 걸린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조직 차원에서 관계성범죄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사건은 후순위로 밀리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경기남부지역 한 경찰 관계자는 "며칠 전 아동학대 의심 신고 접수건이 이날 스토킹 범죄 등보다 먼저 보고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배로 뛴 긴급응급·잠정조치 신청관계성 범죄에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기조 탓에, 경찰의 긴급응급·잠정조치 신청 건수는 크게 늘고 있다. 법원·검찰 단계에서 기각될 가능성과 무관하게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접근금지·전자장치부착·유치장 유치 등 1~4호의 단계별 조치)를 모두 신청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잠정조치 신청 건수는 967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237건)보다 55.1% 늘었다. 특히 대통령이 스토킹 대응을 강조한 3월 이후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3월 한 달에만 전년 동월 대비 96.4% 급증했다.
법원의 잠정조치 결정 건수도 늘었다. 올해 상반기 법원 결정 건수는 732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082건)보다 44.1% 증가해, 경찰의 신청 증가와 함께 법원 단계에서도 대응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긴급응급조치 신청 건수 증가폭은 더 크게 늘었다. 올해 상반기(1~6월) 잠정 통계치에 따르면 6381건으로, 지난해 2877건보다 121.8% 늘었다. 특히 4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177.2% 증가해 3배 가까이 뛰었다.
전문가 "단순 지침만으로는 못 푸는 문제"경찰 내부에서는 인력 충원은 물론, 가해자에 대한 개입 등 근본적인 처방 지침과 예산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방적인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관계성범죄 담당 인력이 순차적으로 늘어나고는 있지만, 사건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가 나가는 게 원칙인데, 따뜻하게 숙소에 가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면 오히려 쉽게 진정이 될 때가 많다"며 "지금은 피해자한테만 그런 공간이 제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역시 정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위에서 지침을 내리기는 쉽지만, 현장에서 그걸 다 소화해 감당하고 대응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며 "일선의 실상과 정책적인 제도 사이에 상당히 간격이 있다 보니 이런 불만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보호하면서도 잠재적 범죄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절충점을 찾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현장의 업무 부담을 인지하고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관계성범죄 접수 시 즉일조사는 원칙이지만 피해자 동의를 전제로 한다"며 "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를 사안과 무관하게 전부 신청하라는 지침은 없고, 일선 서 자체 판단에 따른 대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험도 분류 등 지침을 항상 현장 의견을 반영해 개선해왔고, 현재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청과 법무부·성평등가족부·대검찰청으로 구성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는 지난 13일 '스토킹·교제폭력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가해자 위험도를 3단계로 분류하는 체계를 도입하는 등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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