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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과 공황장애... 뭉크가 치료를 거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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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과 공황장애... 뭉크가 치료를 거부한 이유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잘 알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 가운데 다리 위에 선 인물과 주변 환경이 온통 휘어져 출렁거리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묘사한 <절규>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는 만성적인 불안 장애, 우울증 등 여러 정신 질환에 평생 시달렸다. 어려서부터 가족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정신적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다섯 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한 살 위의 누나에 의지하며 성장하던 중에 불과 열다섯 어린 나이에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몇 년 후부터 뭉크는 심각한 신경쇠약과 공황장애를 앓았으며, 악마의 환영을 보거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평생 만성적인 불안 장애에 시달린 뭉크

뭉크의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은 불안 장애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던 그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인물과 뒤편의 여러 사물이 고정되지 못하고 공중에 떠도는 느낌이다. 오른쪽 벽에 걸린 여자 누드 그림도 발 붙일 곳을 못 찾은 듯 허공에 둥둥 떠 있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불안증 위에서 부유하던 정신 상황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서로 아무런 연관 없이 분리된 듯 배열된 여러 사물은 그를 불안으로 몰아넣는 무의식 세계를 반영하리라. 무어라 규정할 수 없이 혼탁한 무의식은 불안 상태 그대로를 보여준다. 마치 여러 개의 무거운 물건을 한 가닥 가는 줄로 들고 버티듯이, 일상의 불안 속에서 신경이 곧 끊어질 듯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야 했던 내면을 묘사한 자화상으로 보인다.

세부 묘사를 봐도 마찬가지다. 침대 시트는 무늬까지 섬세하게 그렸으면서, 정작 자신의 눈은 뭉뚱그려 놓았다. 눈동자가 정확히 묘사되지 않아서 갈 길을 잃은 시선으로 다가온다. 왼쪽 벽에 세워둔 대형 괘종시계는 사람의 키보다 크다. 그런데 얼굴에 눈·코·입을 표시했지만, 비슷한 크기의 시계 원에는 시침과 분침이 보이지 않는다. 간단히 두 번의 붓질로 표시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일부러 생략한 듯하다.

사망하기 불과 몇 년 전, 70대 후반의 자화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다. 얼굴은 이미 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서 한눈에 쇠약한 노년기임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지배한 광기가 유년기·소년기에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내면은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멈추어 있었음을 나타내려는 게 아닐까 싶다.

병적인 불안이 뭉크를 예술가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신경증 때문에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난 병이 치유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의 예술에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화가로서의 인생 전체가 불안을 껴안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기에, 뭉크는 자기 예술에는 병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도 뭉크는 거듭 자기 예술과 신경증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내 예술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숙고에서 나왔다. 왜 나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가? 왜 내 요람에는 일찍이 저주가 내렸는가? 왜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주체적 선택도 없이 던져졌는가? 나의 예술은 이러한 나의 삶에 의미를 주기 위한 것이다."

'요람' 언급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정신적 기질 때문인 듯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는 신경증적 광포함을 보였다. 어린 뭉크는 아버지의 발작적인 정신 질환을 싫어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결국 "나는 아버지의 신경증적인 광포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라고 고백했다. 그러한 광기가 "나의 예술 세계에도 각인되어 있다"라고 했다.

뭉크는 일차적으로 극한의 정신적 고통을 그림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자신의 신경증을 견뎌냈다. 나아가서는 병적 불안과 우울이 곧 가장 중요한 예술적 자양분이기도 했다. 죽는 날까지 예술가에게 필수적인 창의성의 원천 역할을 했다.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광기의 화가 세라핀

광기가 예술가의 창의성 원천으로 작용하는 게 뭉크를 비롯한 일부 예술가만의 특이한 사정은 아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과 문화의 발전에 광기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우리의 황량하고 지쳐버린 문화가 디오니소스적인 마력에 접할 때 어떻게 변하는가! 디오니소스라는 광풍이 불어 모든 노쇠·부패·파손·위축을 붉은 먼지구름 속에 휘감아 독수리처럼 저 멀리 허공 속으로 채어가 버린다. (…) 그들의 이름은 광기·의지·비통함이다. 친구들이여, 나와 함께 디오니소스적 삶과 비극의 재탄생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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