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 장종훈은 왜 '대학 나온 아빠' 되기를 포기했을까

1985년, 한국프로야구의 7번째 구단으로 창단한 이글스는 선수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3년 전 리그와 함께 창설된 6개 구단은 기존에 활동하던 실업리그의 선수들을 출신지 별로 나누어 뼈대를 놓았고, 해마다 각 연고지에서 배출되는 선수들을 보태 선수단을 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발주자 이글스는 딱 그해 대학을 졸업하던 연고지 출신 이상군, 민문식, 전대영. 그리고 선수들이 남아돌던 삼성과 선수가 남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선수들이 좀 있던 롯데가 보내준 5명을 보탠 8명으로 출발해야 했다.
1군에 합류하기로 한 1986년까지 어떻게든 선수들을 모으느라 혈안이 돼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 1년 사이에 공개테스트를 열고, 이런저런 사연으로 각 구단이 계약을 포기한 경력직들을 끌어들이고, 그리고 또 그해 대학을 졸업하던 한희민과 김상국 등을 엮어 간신히 50여 명의 머릿수를 채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양으로나 질로나 당분간은 뭔가 승부를 걸어볼 여지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30승에 빛나는 장명부와 70년대 실업야구 홈런왕 김우열 같은 굵직한 이름들도 있었지만, 이미 선수로서의 모든 생명력을 소진해 버린 흔적들일 뿐이었다.
그런 이글스가 가까운 미래에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니 몇 해 안에 꼴찌 언저리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그 무렵 야구를 좀 아는 이들 중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먼 훗날 8, 9, 10번째 창단 구단들이 우수한 신인들에 대한 지명권을 선점하고 기존 구단들의 핵심 외 전력들을 수혈받는 제도적 지원을 받게 된 것과는 달리, 첫 신생구단 이글스는 그야말로 '가을에 씨 뿌리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해야 했다.
첫 신생구단, 이글스
그 암담하고 어수선한 와중에 조용히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장종훈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청주의 세광고를 졸업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고향을 연고로 창단한 프로팀에서 월급 몇 십만 원을 받으며 선수들의 훈련을 보조하는 일을 하던 소년이었다. 각 구단이 연고지 출신 선수들을 거의 무제한으로 뽑을 수 있던 그 시절, 그것도 선수가 부족해 리그 합류를 위한 머릿수 채우기에 급급했던 신생팀의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면 선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장종훈이 도대체 누구고, 어떻게 어느 사이에 팀의 정식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지 아는 사람도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글스의 두 번째 시즌이었던 1987년, 4월 15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대전 홈경기에 유격수로 등장한 그 낯선 얼굴의 소년은 첫 타석에서 2루타를 때린 데 이어 희생타와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과 역전 타점까지 만들어내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반짝이기도 했던 기존의 주전 유격수 이광길과 주거니 받거니 하긴 했지만 94경기에 출전했고, .270의 타율에 8개의 홈런까지 기록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알바'로 합류해 정식 선수가 되기까지의 19살과 20살 사이, 키가 뒤늦게 자라고 몸집이 커지면서 힘이 붙었고, 마지막 한 올의 기회와 가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듯 쌓아올린 연습이 타구의 비거리를 쭉쭉 늘려갔기 때문이다.
1989년에는 이광길이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하면서 그는 팀의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았고, 그렇게 출전 시간을 늘리고 경험을 쌓아가며 성적도 끌어올렸다. 1988년에 12개, 1989년에 18개로 홈런 개수를 늘리며 '공격형 유격수'로 이름을 알리더니 1990년, 드디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홈런왕과 타점왕 2관왕에 등극했다. 28개의 홈런도 그 시절엔 역대급 기록이었지만 91개의 타점은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는 1992년까지 3년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특히 1991년에는 홈런과 타점 외에도 안타, 득점, 장타율 부문 타이틀까지 휩쓸었고 1992년에는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시즌 40개 이상의 홈런(41개)을 기록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홈런왕'이라는 당연한 수식어 앞에 사람들은 유독 '고졸' 그리고 '연습생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빼먹지 않았다. 더 놀라운, 더 대단한 성공을 드러내기 위한 뜻이었다. 물론 장종훈 본인과 그 부모는 그 단어를 읽을 때마다 고마운 밥이 목에 걸린 듯 쓴웃음을 지었다. 개천에서 난 용이 개천을 사랑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고졸, 연습생 출신,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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