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룩한 네 살 손자, 할머니가 꺼낸 마법의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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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참 많은 일을 겪었다고 자부했다. 수많은 학생을 달래고 지도했으니 육아 쯤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퇴직 후 마주한 손주 육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교단에서의 관록은 네 살, 두 살배기 손주들의 느닷없는 떼쓰기 앞에서 보기 좋게 무너져 내리곤 한다.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을 때는 세상에 이런 천사가 없다가도,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베테랑 교사였던 나조차도 금세 머릿속이 하얘지며 당황하고 만다.
특히 식성이 뚜렷한 아이들이라 기분을 맞춰주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아빠 식성을 쏙 빼닮아 면 요리라면 자다가도 깨는 첫째 둥둥이와 둘째 에그에게 "할머니가 맛있는 국수 삶아줄까?" 제안해 보기도 하고, 엄마를 닮아 빵을 좋아하는 녀석들에게 "부드러운 식빵 구워줄까?" 하고 달래보지만, 마음이 틀어진 아이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럼 우리 기분 전환하러 밖으로 산책 갈까?" 하고 달래봐도 온몸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싫다고 버티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특히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아 '엄마'라는 말밖에 못 하는 둘째 에그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릴 때는 난감함의 정점을 찍는다. 어디가 아픈 건지, 단순한 심술인지 알 길이 없으니 그저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이리저리 안아주고 달래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손주 육아란 매순간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하는 현장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육아 전쟁의 판도를 뒤흔든 기적이 일어났다. 우연히 던진 한마디 덕분이었다.
"에그야, 뻥튀기 줄까?"
순간 에그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돌아보았다. 얼른 팬트리에서 커다랗고 둥근 뻥튀기 하나를 꺼내 쥐여주니, 양볼에 눈물을 달고서 배시시 웃는 게 아닌가. 아, 찾았다! 우리 집 육아의 신무기. 이때부터 둘째가 울음을 터뜨리면 나는 일단 마법의 주문처럼 뻥튀기를 내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놀라운 마법은 첫째 둥둥이에게도 그보다 더 강력하게 통했다.
현관문 앞에서 '얼음'이 되어버린 첫째 둥둥이
오늘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첫째 둥둥이의 기분이 눈에 띄게 좋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어린이집 차 문이 열리자마자 "할머니!" 하고 외치며 까불 거리고 장난을 쳤을 녀석이, 그날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시무룩했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심스레 "우리 둥둥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말을 건넸지만, 둥둥이는 "음... 음..." 하며 여러 번 뜸만 들였다. 작은 입술을 달달 떨며 금방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모습을 보니, 네 살 작은 가슴에 감정이 복받쳤나보다. 아이들의 침묵은 수다보다 무섭다.
"그래, 괜찮아. 천천히 말해봐."
등을 토닥이며 다독이는 내게 둥둥이는 앞뒤 맥락도 없이 한마디를 서럽게 툭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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