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외모 고민하는 나를 후려친 문장

새벽잠이 부쩍 없어졌다. 나이 듦의 신호인가, 드디어 올 것이 온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 네 시면 눈이 떠졌는데 요즘은 세 시에도 깬다. 문제는 생각도 함께 깨어난다는 것. 뒤척이다 20분쯤 지나도 잠이 오지 않으면 미련 없이 일어난다. 거실로 나가 노트북을 연다. 기꺼이 이 새벽을 즐기기로 한다.
새벽 감성을 예열하기에는 시집만 한 것이 없다. 요즘은 고명재 시인의 시를 곱씹어 읽는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나면 내 글도 몇 줄 새로 쓴다. 그러다 여섯 시가 되면 억지로 주방으로 향하는데, 마음은 여전히 노트북 앞에 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남편은 삼겹살 유통기한을 들먹이며 아침 메뉴로 고기를 구워달라고 했다. 저녁 약속을 줄이고 집돌이가 되더니 이제는 아침부터 삼겹살을 찾는 대범한 남자가 되었다. 아무래도 인생에서 먹어야 할 '삼겹살 총량의 법칙'이 그에게는 있나 보다. 하지만 기껏 말랑하게 만들어 놓은 새벽 감성을 삼겹살 기름으로 번들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삼겹살 대신 식빵을 구워 식탁에 올렸다.
나를 살리는 또 다른 시간을 찾아서
가족들을 위한 최소한의 숙제를 마치면 새롭게 빠진 취미 생활을 즐기러 간다. 올해 처음으로 붉은 꽃이 피는 배롱나무를 심고, 그 아래 몇 가지 꽃모종을 심었다. 요즘은 시든 꽃대를 잘라주는 '데드헤딩(deadheading)'이 한창이다.
처음에는 지는 꽃을 두 번 죽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든 꽃대를 과감히 잘라내야 그 자리에서 새 꽃대가 올라와 더 풍성한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이었다. 제2의 개화기를 맞아 다시 생기를 뿜어내는 꽃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마당에서 시든 꽃대를 정리하고 있는데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딸이 마당으로 나왔다. 1분이라도 지체되면 발을 동동 구르는 딸 때문에 평소 남편은 시동을 켜기가 무섭게 출발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차를 움직이기 전 슬그머니 창문을 내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당신이 그렇게 꽃밭에 서 있으니까 뭐가 꽃인지 분간이 안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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