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지는 마트에서 파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는 가지를 몹시 싫어하는 여인, 페르미나 다사가 등장한다. 결혼하기 전부터 "나는 가지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런데 결혼 후 시어머니가 내놓은 가지 요리를 자신도 모르게 다 먹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가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페르미나 다사처럼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흐물흐물한 가지무침, 숟가락만 닿아도 뭉개지는 그 질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십 년 넘게 가지를 키워왔다. 지금은 열 종이 넘는 가지를 심는다. 페르미나 다사에게는 극적인 반전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직 없다.
나는 여전히 가지무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년 씨앗을 뿌린다. 마트에서 보던 가지와 내 밭의 가지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흰 가지를 처음 만난 날
처음 흰 가지를 키웠을 때였다. 이파리 사이로 하얀 것 두 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초록 꽃받침이 마치 요람처럼 받치고 있었고, 그 안에서 눈처럼 흰 열매가 반짝였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채소라기보다 새가 낳은 알 같았다.
영어에서 가지를 'eggplant'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 유럽 사람들이 만난 가지 가운데 달걀처럼 희고 둥근 품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남았지만 정작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가지는 길쭉한 보라색이다.
강화에서 흰 가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떠올랐다. 그는 텃밭의 가지를 노래하며 '푸른 알과 붉은 알'이라고 적었다. 영어의 'eggplant'와 고려 문인의 표현은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둘 다 가지를 보며 가장 먼저 '알'을 떠올렸다는 점이 흥미롭다. 8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흰 가지를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내 밭에는 이름도 아름다운 가지들이 산다. 비올레타 디 피렌체. 로사 비앙카. 안티구아. 이름만 들으면 채소가 아니라 향수나 오래된 그림 같다. 실제로도 그렇다. 연분홍 장미 꽃잎 같은 가지가 있고, 흰 바탕에 보랏빛 줄무늬가 번지는 가지가 있다.
손바닥만 한 둥근 가지도 있고, 검은 자주색으로 길게 자라는 가지도 있다. 한 바구니에 담아놓으면 같은 채소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마트에 가면 가지는 늘 한 가지 얼굴뿐이다. 하지만 씨앗을 심기 시작한 뒤 알게 되었다. 가지는 원래 이렇게 다양한 채소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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