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현대는 도쿄로, 돈키호테는 대구로…한일 유통 경계 허문다
[서울=뉴시스]권민지 기자 = 한국과 일본 유통기업들이 상품 수출과 현지 업체 입점을 넘어 상대국에 직접 매장을 열고 판매망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진출 전략을 넓히고 있다. 브랜드 역시 일회성 상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 계획을 세워 상대국 소비시장에 뿌리내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한일 유통기업들이 서로의 시장을 바라보는 배경에는 양국이 공통으로 맞닥뜨린 내수 성장의 한계가 있다.
한국은 인구 감소와 소비 부진 속에서 유통·패션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 역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내수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해외 소비자 접점 확대가 중요해지고 있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소비문화와 생활 방식에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K-컬처에 익숙한 일본 젊은 소비자가 늘어난 동시에 한국에서도 일본 식품과 화장품, 캐릭터, 할인점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상호 진출의 문턱을 낮췄다.
다만 최근의 움직임은 단순히 한류와 일본 문화의 인기에 기대 상품을 판매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주요 수출·수입 시장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으나, 이제는 상품뿐 아니라 매장과 플랫폼, 운영 방식까지 상대국 시장으로 옮겨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이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에 문을 연 '더현대(THE HYUNDAI)'는 개점 초기부터 목표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10일 도큐 플라자 오모카도 3층에 더현대 글로벌의 첫 해외 플래그십 정규 매장을 열었다. 기존의 단기 팝업스토어가 아니라 현지에서 상시 운영되는 매장을 구축해 K패션과 K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형태다.
매장 개점 이후 도큐 플라자 오모카도의 20·30대 방문객은 개점 전보다 5배 이상 늘었다. 매출도 개점 직후 수요 집중을 고려해 세운 목표치를 30% 이상 웃돌았다.
현대백화점은 단순히 한국 브랜드를 모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관과 물류, 매장 운영, 현지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국내 중소 브랜드가 일본 진출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비용과 운영 부담을 유통기업이 대신 떠안는 구조다.
국내 패션기업도 일본 시장을 단기 테스트 대상이 아닌 장기 판매처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형지I&C는 여성복 브랜드 '캐리스노트'를 앞세워 11월 일본 홈쇼핑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달 일본 패션 전문기업 패션넷의 상품 발주를 받은 뒤 현지 맞춤형 생산에 들어가 11월 초도 물량을 선보일 계획이다.
핵심 유통 채널은 일본 홈쇼핑 플랫폼 '숍채널(SHOP CHANNEL)'이다. 홈쇼핑 진출을 시작으로 현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망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브랜드 인지도와 판매 기반을 쌓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일부 패션기업의 해외 진출이 현지 팝업이나 한정 판매를 통한 시장 반응 확인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발주와 생산, 판매 채널 확대 일정까지 사전에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상대국 소비자의 체형과 취향, 구매 방식에 맞춰 상품과 유통 구조를 장기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본 대형 할인점 돈키호테 운영사 PPIH는 대구백화점 본점 입점을 검토하고 있다.
대구백화점 인수를 추진 중인 세경인베스트에 따르면 PPIH는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본점 1층부터 4층까지를 임차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입점이 확정되면 국내 첫 돈키호테 매장이 된다.
돈키호테 경영진은 다음주 대구를 방문해 본점 부지를 확인한 뒤 입점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대구백화점이 운영 중인 대백마트 140여 곳을 매장으로 활용하거나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단일 점포를 열어 시장성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지역 유통망을 활용해 사업을 확대할 가능성까지 열어둔 셈이다.
일본 식품기업도 한국을 단순한 수출 시장이 아닌 장기 육성 시장으로 보고 있다.
일본 오하요유업은 22일 프리미엄 디저트 아이스크림 '오하요 브륄레 밀크'를 국내에 정식 출시하고 전국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오하요유업은 2024년 '오하요 저지 우유푸딩'을 국내에 출시한 데 이어 두 번째 제품을 선보였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저지 우유푸딩 출시 이후 지난해 디저트 카테고리 매출은 30% 증가했고, 올해도 60%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오가와 케이스케 오하요유업 이사는 한국을 회사의 주요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향후 10년에 걸쳐 프리미엄 디저트 브랜드로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추가 출시 제품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겠다는 방침이다.
일본 뷰티 브랜드 역시 한국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뷰티 리뷰 플랫폼 글로우픽은 11일 서울에서 'J-Beauty FES in SEOUL 2026'을 열었다. 행사에는 비오레와 캔메이크, 큐렐, 하쿠, 이하다, 질스튜어트 뷰티, 비세 등 일본 뷰티 브랜드 12개와 국내 소비자 300명이 참여했다.
브랜드가 제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기존 수출 상담회와 달리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사용하고 개발 배경과 브랜드 철학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본 브랜드는 현장에서 한국 소비자의 반응과 의견을 수집했다.
일본 브랜드가 국내 유통 채널에 공급하는 제품에 대해 한국 소비자의 사용 경험과 피드백을 상품 기획과 마케팅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한일 유통시장의 교류는 앞으로 수출입과 함께 '현지화'도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상품을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유통망과 브랜드를 직접 구축하고 현지 소비자를 확보하려는 전략이 본격화하면서, 양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해외 소비시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g@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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