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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1호의 자태…장엄하면서 찬란한 미의 결정체

국제신문(부산) - 전체기사

- 유네스코 로고 된 ‘탁월한 가치’- 2500년 풍파와 전쟁 파괴 견뎌- 46개 기둥 인류 미적 감각 증명- 도시명 유래된 아테나에 봉헌- 절제된 건축양식 현재도 유효- 세계 곳곳 주요 건물마다 영감지금 부산에서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유산협약 가입국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 인류 공동의 자산인 세계유산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다.

세계유산 답사에 마음을 다해온 부산 시민으로서, 이 도시에서 위원회가 열린다니 참으로 뜻깊다.이 기회에 유네스코 로고(사진)를 한번 보자.

‘세계유산 1호’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인류 문화의 상징성을 지닌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이 보일 것이다.

물론 세계유산은 등재 순서나 중요도에 따라 번호를 매기지 않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심사해 등록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징적으로 ‘1호’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파르테논이다.■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물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와 놀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는 스스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 덤으로 생기는 이득이 있으면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우연히 ‘그냥’ 얻은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는 언제나 대가나 이유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이유 없는 반항’은 있을지라도, 이유 없는 ‘그냥’은 없다.

파르테논이 유네스코 로고가 된 것은 ‘그냥’이 아니고 다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오르면 문명의 향기가 진동한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세계유산 1호가 있는 곳인데.

황홀한 그 향기만으로도 저절로 느끼게 된다.

파르테논이 ‘그냥’ 세계문화유산의 상징이 아님을.

그리고 그 앞에서 저절로 물개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우선, 파르테논은 2500여 년의 세월 동안 위엄을 잃지 않고, 우아하고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고난과 상처를 감내해야 했던 대가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17세기 베네치아-오스만 전쟁 당시, 오스만 군대가 파르테논을 화약 창고로 사용하다 포격을 당해 심각하게 파괴된 일이었다.

인류의 소중한 유산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정말이지 심히 꾸짖고 싶다.당연히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냈다는 사실만으로 인류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없다.

파르테논은 고대에 지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특히 백색 대리석이 태양광을 받아 반사될 때 장엄함이 절정에 이르면서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다.

이 건축물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향했던, 아니 어쩌면 인류가 꿈꾸어 온 미적 이상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일 지도 모른다.

마치 인간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세워진 듯한 인상을 준다.특히 파르테논의 46개 기둥은 그 미적 감각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기둥의 아름다움은 단연코 곡선이다.

기둥의 중심부로 갈수록 약간 굵어지는 양식, 이를 ‘엔타시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배흘림기둥’으로 부른다.

한국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의 원조라고 보면 된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소박한 아름다움, 그 자체 아니던가.

이런 곡선의 배흘림기둥은 시각적으로 부드럽고 안정된 인상을 주며, 아름다움과 균형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파르테논의 바닥과 지붕 또한 겉보기에는 직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섬세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건축물의 선을 살짝 휘어지도록 설계한 것은 인간의 시각을 고려한 고대 그리스 건축가들의 탁월한 기법이었다.

아, 참으로 위대한 그리스인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위대함 앞에서 침묵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나와보라.무엇보다 파르테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건축물 중 하나다.

파르테논은 수천 년 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적 설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기둥 상단에 화려한 장식이 없는 절제된 도리아식 건축 양식은 힘과 균형을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 건축의 원형으로서 경건함과 위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의 중요한 기관들은 이 양식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경희대학교 본관과 덕수궁 석조전 역시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지어진 건물이다.

자, 이 정도면 세계문화유산 1호라는 상징적 별칭이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냥’ 유네스코 로고가 된 것이 아니다. ■아테나 여신 신화 간직한 곳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 특히 아테나 여신의 이야기는 탁월한 서사적 힘을 지니고 있어 묘하게 깊은 몰입감을 준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대결에서 올리브나무를 선물해 승리함으로써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을 만든 아테나는 신화 속에서 가장 지혜롭고 강력한 여신이다.

그녀는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날 때 이미 무장한 성인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갓난아이가 웬 무장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신화는 신화로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무장한 아테나 여신의 방패에는 메두사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

뱀 머리카락과 돌로 만드는 눈빛으로 유명한 메두사, 그 머리가 왜 방패에 놓였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메두사는 고대 신화에서 고르곤 세 자매 중 막내로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특히 머리카락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많은 남성이 신전의 사제였던 메두사를 보려고, 아테네 신전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불변의 법칙처럼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한다.

외모에 대한 끌림은 문화나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본능적 감정이니 어쩌겠는가.

신화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인 만큼, 이러한 본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메두사에게 반했다는 것이다.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아테나는 가지고 있는 힘으로 메두사를 괴물로 만들었고, 결국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목을 베어 오라는 임무를 맡겼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만, 아테나가 메두사에게 얼마나 깊은 원한을 품었기에 그런 극단적인 저주를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 아테나에게 바쳤고, 아테나는 그것을 부적처럼 자신의 방패에 붙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적을 위협하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방어와 보호의 상징으로서 여신의 이미지를 완성했다.지금까지의 신화 속 아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가.

고대사회가 남성 중심적이었으니, 이야기에는 남성의 시각과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은, 그것도 감히 여신을 여성의 질투 서사 속에 끌어들였을까.

실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권리는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테나의 권위는 신화 속에서 어떻게 허용될 수 있었을까.하나의 시각일 수 있지만, 남성 중심 사회가 신화 속에 여신의 권위를 만들어 놓고, 여성 간의 연대를 분열시키고,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아테나가 메두사를 저주해 괴물로 만들고 메두사의 머리를 방패에 새겨 넣은 것 또한 여성적 힘을 제압해 권위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고대사회의 성별 불평등이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메두사는 괴물로 처벌받았으나, 포세이돈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자체도 성차별이 된다.이런 성차별은 신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신화도, 역사도 결국 ‘His-story’, 남성들의 이야기였다.

오늘날에도 성별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를 극복하려는 운동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들의 외침은 단순히 ‘His-story’를 ‘Her-story’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Human-story’를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되고,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메두사의 방패를 들고 서 있는 아테나 여신도, 고대 성별 불평등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억울해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차별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계유산과 차별 없는 평등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인류 공동의 보편적 가치이다.

그렇다면 세계유산의 상징인 파르테논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가치를 깊이 성찰하며 끝내 지켜내라고 우리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최진숙 전 영산대 글로벌학부 교수·‘세계10대유적지기행’ 저자·유적지 기행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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