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뉴스43건8개 미디어
정치
진보 성향

이제부터 할 일은, 기업의 안전 관리자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것

오마이뉴스
조회 0
이제부터 할 일은, 기업의 안전 관리자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것

노동환경건강연구소를 만난 행운

-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신범을 한 단어,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저는 사실 겁이 되게 많은 '또라이'인 것 같아요. 꾸역꾸역 뭔가를 하긴 하는데 되게 무서워하고 조심하면서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마음을 먹으면 일단은 가요. 명함에 쓰여 있는 것으로 소개하자면 픽켐 대표이사이고, 우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수석연구원이에요.

저는 대학원을 갈 때 그냥 어떤 단체 활동가가 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거든요. 제가 조교 생활 할 때는 IMF였고, 당시 방송통신대 학생들의 분위기가 뜨거웠어요. 논문을 써야 되는데 '나는 실험을 해보고 싶다. 그러면 공부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우리 과에 실험실이 있고 제가 관리했고요. 그래서 원하는 학생들을 모집해서 실험을 하는데, 그때 한국노총 연구소가 만들어졌어요. 노동조합의 연구소가 나한테는 더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노동조합의 연구소 채용이 다시는 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고민을 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버릴 순 없었죠. 그래서 이 분들은 논문 써서 졸업하고, 우리 연구소가 만들어지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죠."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창립멤버네요. 연구소 소개도 부탁드릴게요.

"연구소는 원진레이온 직업병 때문에 만들어졌어요. 1988년도에 직업병이 알려진 이후 10년간 싸움을 해서 보상을 받고, 최종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녹색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기금을 보상 받았어요. 개별 보상으로 그친 게 아니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병원과 연구소를 만들었던 거죠. (문제가 있는데) 문제가 없다고 거짓말을 안 하는 연구자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연구소입니다. 처음에는 화학물질이나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지만 근골격계 질환이나 정신 건강, 지금은 농민들, 정규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문제들을 연구하고 있어요.

특히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 일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제가 민주노총하고 같이 했던 일이 의자 캠페인,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제공하는 캠페인을 기획했죠. 왜냐하면 연구소에서 부를 수 있는 노동조합들은 대기업 노동조합들이거든요. 물론 그들도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었던 건 맞지만 그거보다 훨씬 어려운 노동자들이 제 눈엔 보이니까. 노조도 없는 곳들이요. 그래서 연구소 들어와서 서울 일반노조 조합원 생활도 했어요. 더 많이 이해하고 해 보려고."

20년 동안의 활동, 그리고 전환

- 20년이 훌쩍 넘게 연구소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활동해 오면서 기억에 남는 캠페인이 어떤 게 있을까요?

"의자 캠페인을 통해서 배운 게 많아요. 당시 백화점이나 마트에 진짜 의자가 없었거든요. 이 분(캐셔)들에게 가서 물어보면 스스로 노동자라는 생각조차 안 했던 거예요. 캠페인을 만들었던 건 '우리가 노동자다', '법에 의해서 내가 앉을 권리가 있었구나'라고 알려주기 위해서였거든요. 어린이에 관련된 일은, 'PVC 없는 학교 만들기 캠페인'이라고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학교 만들기'(유자 학교)를 했고, 지금은 선생님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어요. 출발은 밖에서 시작했지만 학교 안에 주체들이 스스로 하는 운동을 만든 되게 좋은 사례였던 것 같아요.

속상한 일도 있었는데, 경주에서 젊은 이주 노동자들이 열악한 공정에 투입되는데 (그 공정에) 환경호르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불임, 생식기 계통의 암 확률을 높이는 것이고요. 자동차에 충격 방지할 때 쓰는 부드러운 실런트(접착부 사이에 연결 용도로 쓰이는 액체 또는 연고성 물체)와 같은 것들을 뿌린단 말이에요. 그런 걸 바르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환경호르몬이 굉장히 높은 농도로 나오더라고요. 근데 환기 장치도 없고, 보호구도 없이 그냥 고스란히 마시는 것이죠. 그런 걸 이주 노동자들에게 알려주고 그랬죠.

제가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법에 의지한 적이 없어요. 고소 고발을 하는 게 아니라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사자의 마음으로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을 해요. 안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고, 전문가로서 보고서를 써서 주면 된 거지 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그냥 옆에서 그냥 쭈그려 앉아 있었던 사람인 것 같아요. 왜 내가 당사자의 관점에서 이걸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는데, 그게 제가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론이었던 것 같아요."

- 이제 몇 년 뒤면 연구소 30주년입니다. 한국처럼 굉장히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곳에서는 긴 시간일 수 있는데 그 기간 동안에 이런 산업안전 노동안전 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김신범 선생님이나 연구소의 변화도 궁금해요.

전체 내용보기 ...

전문 보기

이 뉴스,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나요?

첫 반응을 남겨보세요

로그인하면 감정 반응에 참여할 수 있어요.

관련 뉴스 제보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