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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치민 총영사관 별관, 사설 유학원 영업장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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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치민 총영사관 별관, 사설 유학원 영업장으로 전락?

주호치민 총영사관 본관(107 Nguyen Du, Ben Thanh Ward)에서 2.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별관(47 Nguyen Cu Trinh Street, Cau Ong Lanh Ward, District 1). 호치민시의 가장 번화한 곳이자 상업중심지인 '1군'(Quận 1, District 1)에 자리잡고 있다. 한때 '한국회관'으로 불렸던 이곳은 월남 정부('베트남공화국'을 가리키는 용어로 '남베트남 정부'라고도 한다) 시기 사이공(현 호치민시)에 진출해 있던 한국기업과 한인회의 모금, 월남 파월군인의 헌신과 정부의 지원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월남 정부의 패망 이후 현 베트남 정부(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 의한 몰수 조치, 한국-베트남 수교 이후 반환과 국가자산 재등록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현재는 호치민한인회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베트남지부(1층), 호치민한국교육원(3층, 교육부 부설 기관), 아시아문화교류재단(ACEF, 비영리 민간단체) 호치민한국문화센터(4층) 등이 입주해 있다.

하지만 최근 주호치민 총영사관에 별관 운영과 관련한 '진정서'가 제출됐다. 별관에 입주한 비영리단체인 아시아문화교류재단 호치민한국문화센터가 한국의 한 사설유학원과 함께 별관 안에서 유학사업 등 영리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정인은 "공적 자산(공간)을 사적인 영리 활동에 전용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아시아문화교류재단 호치민한국문화센터와 코리아탑유학원은 <오마이뉴스>에 보낸 답변서에서 "별관에서 영리유학사업을 한 적도 없고, 유학원으로부터 후원금 등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진정서 내용을 부인했다. 외교부와 주호치민 한국총영사관은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도대체 베트남 전쟁과 월남 파병, 한국-베트남 수교 등 54년의 한국-베트남 현대사가 오롯이 새겨진 주호치민 총영사관 별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별관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월남 패망과 몰수, 국가자산 재등록의 우여곡절… '한국회관'에서 '별관'으로

한국과 베트남(월남)은 지난 1956년 3월 첫 수교를 맺고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당시 주월남 한국대사관은 월남 정부의 수도였던 사이공에 있었다. 현재 주호치민 한국총영사관으로 쓰고 있는 건물이 당시에는 주월남 한국대사관이었다. 한국은 전투부대가 첫 파병됐던 지난 1965년 2월부터 철수를 완료한 1973년 3월까지 몇 차례 군을 파병했다. 월남 파병은 국군 역사상 첫 해외 파병 사례였다.

베트남 전쟁(휴전 협정 포함)이 진행되고 있던 지난 1968년 사이공에서 활동하던 월남교민회가 사이공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편의, 월남인들과의 교류 등을 목적으로 회관 건립을 제안했다. 이에 주월남 한국대사관은 정부에 예산 지원을 건의해서 승인을 받아냈다(1969년). 이후 사이공에 진출해 있던 한국 기업과 교민회 등 여러 단체들의 후원, 월남 파병군과 정부의 지원 등을 받아 지난 1972년 5월 '한국회관'을 준공했다.

2022년 4월 14일 자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회관 건립에는 총 3224만 피아스타(당시 월남 화폐 단위)가 소요됐다. 여기에는 정부 799만 피아스타(24.8%), 교민회 732만890 피아스타(22.7%), 한국기업 등 각종 단체들 1692만9110 피아스타(52.5%)가 포함돼 있다.

한국회관을 6개월(1972년 11월 기공~1973년 5월 완공) 만에 준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월남에 파병됐던 공병대의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제103공병대대와 제127공병대대는 '비둘기부대'(정식명칭은 주월한국군사원조단)라는 이름으로 파병되었다. 주호치민 총영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C씨는 "주월남 한국대사관이 교민과 우리 기업의 모금을 받아 대사관 명의로 토지를 매입했고, 월남 파병 공병대인 비둘기부대가 건축에 참여했다"라고 전했다.

앞서 언급한 <한국일보> 보도를 보면 월남전참전자회 베트남해외회 측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전체 건립비용의 40.9%를 찬조금 형태로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호치민 한국총영사관측은 "당시 공병대가 건축비용 분담 및 자재·인력 지원을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인력만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라며 "장병 찬조금도 일부 있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회관이 공익을 위해 민·관·군이 힘을 합쳐 지은 국가의 재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북베트남정부(당시 베트남민주공화국으로 '월맹'으로도 불렸다)가 지난 1975년 사이공을 점령했고, 한국이 파병 등을 통해 지원했던 월남 정부는 패망했다. 북베트남정부는 같은 해 4월 주월남 한국대사관과 한국회관을 베트남 정부 재산으로 몰수 조치했고, 이에 맞서 한국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삼청동에 있던 주한 월남대사관과 대사관저를 국고로 귀속했다. 그리고 북베트남 정부는 지난 1976년 7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수립했다.

10년이 넘도록 한국-베트남의 외교관계가 단절된 가운데, 베트남에서는 지난 1986년 12월 열린 베트남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개혁파의 지도자였던 응우옌 반린이 당 총서기로 선출돼 베트남식 개혁·개방정책인 도이 머이(Doo Moi) 정책을, 비슷한 시기인 지난 1987년 실시된 한국의 대선에서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돼 이후 공산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북방 외교(북방 정책)를 각각 추진했다.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지난 1992년 12월 한국과 베트남은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이는 노태우 정부가 추진하던 북방 정책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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