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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파브르' 그는 왜 법정에 서야 했나?

노컷뉴스

▶ 글 싣는 순서 ① '한국의 파브르' 그는 왜 법정에 서야 했나?
②"제2, 제3의 홀로세 될까 두렵다" 국가가 맡긴 보전사업의 민낯
③20년째 그대로인 멸종위기종 보전사업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계속)

국내 최초 생태학교 '홀로세'의 탄생지난 6일 찾은 강원 횡성군 갑천면의 깊은 산골.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 끝에는 국내 최초 민간 생태학교인 '홀로세생태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연구소는 분주했다. 수조 속 물장군의 상태를 살피고, 먹이를 갈아주고, 번식 중인 멸종위기종을 하나씩 확인하는 작업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연구소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하루만 사람의 손길이 끊겨도 생사가 갈릴 만큼 예민했다.
 
1997년 아무도 살지 않던 오지에 문을 연 생태학교의 이름 '홀로세'는 인간 활동으로 가속화되는 대멸종, 이른바 '홀로세 멸종(Holocene extinction)'에서 따왔다. 인간 때문에 사라지는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이름에 담겼다.
 
이강운 소장(68)은 14년간 몸담았던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접고 생태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미친 짓'이라며 만류했지만 그의 선택은 흔들리지 않았다. 생태계 보전에 대한 신념 하나로 시작한 도전은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됐고, 아내 이정옥(67)씨는 그 긴 시간을 묵묵히 함께 걸어왔다.
 

설립 초기 이 소장은 사재 20억여 원을 들여 황무지에 가까웠던 2만5천 평의 부지를 생물과 곤충이 살아가는 터전으로 바꿨다. 이후 홀로세 생태학교는 해마다 수만 명의 학생들과 연구자가 찾는 국내 대표 생태교육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2009년 소똥구리 실험실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연구자료와 건물이 모두 불에 탔고, 말벌에 쏘여 아낙필락시스 쇼크로 생사를 넘나든 일도 여러 차례였다.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1남 1녀 중 아들은 대학 1학년 때 연구소에서 풀을 베다 휴식을 위해 풀밭에 누웠다가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돼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생사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아내는 "이제 그만하자"고 눈물을 흘렸지만, 결국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국가가 선택한 멸종위기종 전문가 '한국의 파브르'
생태학교에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로 거듭난 이곳이 '멸종위기종 보전의 중심'로 불리게 된 건 2005년 당시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 소장의 연구 성과와 전문성을 높이 평가해 서식지외보전기관 전환을 제안하면서부터다.
 
멸종위기종 보전과 증식은 단순히 개체 수를 늘리는 사업이 아니다. 생태계 균형과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핵심 환경정책으로, 번식과 유전관리, 서식지 복원, 방사 후 모니터링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는 전문성과 지속성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정책과 관리·감독을 맡고 실제 복원은 전문성을 갖춘 민간기관에 위탁해왔다.
 
'한국의 파브르'로 불리며 생물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쌓아온 그에게 정부의 제안은 평생의 소명을 실현할 기회였다. 그는 비영리 사단법인을 설립한 뒤 올해까지 20년 가까이 서식지외보전기관을 운영하며 사업을 수행해 왔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휴일도, 밤낮도 없었다. 물속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물장군은 먹이를 먹고 남긴 찌꺼기를 제때 치워주지 않으면 수질이 빠르게 악화된다. 동종포식 습성 때문에 수백 마리의 개체를 각각 따로 사육해야 하는 탓에 먹이를 주고 수조를 관리하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붉은점모시나비의 증식은 더욱 섬세한 작업이었다. 한겨울 채집한 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기생충을 하나하나 제거한 뒤 낙엽에 다시 붙이는 작업이 반복됐다. 연구소에서 살아가는 멸종위기종 대부분은 수명이 1년 안팎에 불과해 하루만 손을 놓아도 수년간 이어온 복원 과정이 무너질 수 있었다.
 
이강운 소장은 "멸종위기종은 사람이 하루만 돌보지 않아도 죽을 수 있다"며 "휴일도 명절도 따로 없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결국 사람이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30년에 가까운 집념은 세계도 인정했다. 이 소장은 2014년 자연환경 보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2008년에는 환경부 국민포장을 수훈했다.
 
2021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강원 삼척에서 진행된 붉은점모시나비 복원사업을 '글로벌 보전 이식 관점' 보고서에 수록했다. 국내 무척추동물 복원 사례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 사례집에 포함됐고, 평가 역시 최고 등급인 '매우 성공적(Very Successful)'을 받았다.
 
당시 환경부 장·차관과 세계곤충학회 회장단도 연구소를 찾았다. 연구팀은 붉은점모시나비에서 항균물질을 발견해 특허를 획득했고, 아토피 피부염 치료 가능성이 있는 펩타이드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또 세계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신종 나방 2종과 한반도 미기록종 2종 등을 발견했으며, 현재 연구소에는 212과 4801종, 16만여 점의 곤충 표본이 보관돼 있다.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감사를 자청한 이유
이강운 소장이 20년 가까이 서식지외보전사업을 수행하며 가장 절실하게 요구한 건 멸종위기종 복원과 보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었다.
 
멸종위기종 보전과 증식은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공익사업이지만, 민간 서식지외보전기관은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국가보조금과 자부담금 비율이 '50:50' 이라는 모순적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사업비의 절반은 보전기관이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멸종위기종은 국제협약(CITES)과 야생생물법에 따라 거래가 금지돼 수익을 낼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수익사업은 할 수 없지만 연구와 증식, 시설 유지에 필요한 비용은 오롯이 민간이 감당해야 한다.
 
이 소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생태학교를 연구소로 전환한 뒤 수십억 원의 사재를 투입했고, 부모의 장례식 조의금까지 운영비와 자부담금으로 사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보다 운영비를 걱정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서식지외보전기관 협회장을 맡으며 전국 기관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정부와 국회의 문을 두드렸다.
 
2010년 국회환경포럼에서는 민간 서식지외보전기관에 대한 전액 국고 지원 필요성을 제기했고, 2012년 녹색성장위원회에서도 같은 내용을 건의했다. 당시 김황식 전 국무총리로부터 민간의 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취지의 답변도 들었다.
 
당시 환경부 장관과 차관들이 연구소를 방문할 때마다 그는 "민간의 희생에만 의존하는 현재 구조를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소장은 "18년 동안 사업비 절반을 직접 부담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멸종위기종 일을 그만둬야만 이 고리를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며 "하지만 내가 손을 놓는 순간 복원 중인 생명들은 어떻게 될지 두려워 차마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22년, 당시 환경부로부터 감사 수감 의향을 묻는 연락이 왔다. 그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를 자청했다. 이 소장은 "협회장을 맡으면서 모든 기관이 같은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알고 있었다"며 "감사를 통해 제도의 문제를 정부가 확인해주길 바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제도 개선은 찾아오지 않았다. 감사는 연구소 운영 전반에 대한 수사로 이어졌고, 30년 가까이 멸종위기종 보전과 증식에 매달려온 그는 결국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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