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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반도체 용수 논란, 이제는 '얼마나'보다 '어떻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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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에는 막대한 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호남 반도체 용수 문제의 핵심은 물을 얼마나 더 가져오느냐가 아니다. 이제는 어떤 철학과 원칙으로 물을 확보하고, 배분하며, 다시 돌려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물 관리는 오랫동안 수리적 사명(Hydraulic Mission)에 의해 움직여 왔다. 부족한 물을 저장하고, 옮기고, 통제해 국가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다. 이러한 접근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적 토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지역 갈등, 생태계 보전, 첨단산업의 급격한 용수 수요가 겹치는 오늘날에는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물을 더 많이 확보하는 기술뿐 아니라, 물을 더 공정하고 책임 있게 이용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물 윤리, 새로운 물관리의 기준

호남 반도체 용수 논란을 둘러싼 사회적 피로감은 물이 부족해서만 생긴 것이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어느 곳에서 얼마의 물을 더 끌어올 수 있는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민사회는 공급량의 숫자만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그 물이 누구의 부담 위에서 마련되는지, 유역 생태와 지역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까지 함께 묻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물 윤리가 필요하다. 물 윤리란 물을 단순한 산업 투입재가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 보고, 배분과 이용, 회복의 전 과정에서 공정성과 책임을 따지는 기준이다. 호남 반도체의 물 공급 문제도 공학적 타당성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당성까지 확보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댐을 더 지을 것인지, 하수를 얼마나 재이용할 것인지와 같은 개별 수단의 선택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물 관리를 어떤 철학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철학이 흔들리면 어떤 기술적 대안도 또 다른 갈등의 출발점이 되기 쉽다.

중화학공업 시대의 한국은 물을 더 많이 확보하고 더 멀리 보내는 능력으로 성장했다. 이른바 수리적 사명은 당시로서는 정당한 국가 과제였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지방소멸, 생태 보전, 주민 참여, 첨단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함께 요구되는 지금에도 같은 방식만 반복한다면 해법은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이제 물관리의 성패는 공급량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신뢰는 공학이 아니라 철학에서 시작된다.

수리적 사명은 한국 경제성장의 물적 기반을 만든 중요한 유산이다. 댐과 광역상수도, 공업용수 체계가 없었다면 오늘의 산업화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를 비난하기보다, 그 시대가 요구했던 역할을 정확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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