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안 내려도 美 근원물가 0.2%P 낮아진다…금리인상론 힘 빠지나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미국의 실제 상품·서비스 가격 흐름에 변화가 없어도 물가지표 산식이 바뀌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중시하는 근원 물가상승률은 8월 지표 발표 때부터 약 0.2%포인트 낮게 산출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 미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BEA)이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가운데 소프트웨어와 자산운용, 법률서비스 등 3개 항목의 산정 방식을 개편한다고 보도했다. 새 산식은 9월30일 발표되는 8월 지표부터 적용되며, 과거 5년치 자료도 같은 기준으로 다시 산출된다.
근원 PCE는 가격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해 기조적인 물가 압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 6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6%였지만 근원 PCE 상승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추정치는 3.3%였다. 통상 근원 CPI 상승률은 근원 PCE 상승률보다 조금 높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프트웨어와 자산운용 서비스 가격이 근원 PCE를 끌어올리면서 두 지표의 관계가 역전됐다.
BEA는 PCE 산출에 필요한 가격 자료의 대부분을 직접 수집하지 않는다.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이 조사한 가격 자료를 자체 기준과 산식에 따라 재구성해 PCE를 산출한다. 두 기관의 품목 분류나 계산 기준이 다르면 PCE의 특정 항목에 본래 측정 대상이 아닌 품목의 가격 변동이 섞일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가격을 산정할 때도 BEA는 BLS가 작성하는 컴퓨팅 비용지수를 활용해 왔다. 이 지수는 소프트웨어 전용 지표가 아니어서 USB 메모리 같은 컴퓨터 주변기기도 포함한다. AI 수요 증가로 저장장치 가격이 급등하자 BLS 지수도 올랐고, BEA 산식에서는 하드웨어 가격 상승분 일부가 소프트웨어 물가 상승으로 잡혔다.
BEA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와 웹 호스팅 가격 자료를 추가로 반영할 예정이다. 앨런 데트마이스터 UBS 이코노미스트는 이 변경만으로 PCE 상승률이 기존 산식보다 약 0.1%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자산운용 수수료를 물가지표에 반영하는 방식도 개편 대상이다. 투자자는 일반적으로 운용자산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내기 때문에 수수료율이 그대로여도 주가가 오르면 수수료 총액이 늘어난다. BEA의 현행 산식은 이렇게 늘어난 수수료를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처리한다.
스티븐 미런 당시 연준 이사는 지난해 연설에서 운용자산 증가에 따른 수수료 총액 상승을 물가 상승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같은 서비스의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자산과 서비스 규모가 커진 결과라는 것이다. BEA는 앞으로 금융회사의 수입과 자산운용업계의 노동 투입량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자산운용 서비스 가격을 산출한다. 데트마이스터는 이 변경으로 PCE 상승률이 기존 산식보다 약 0.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법률서비스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BEA는 그동안 BLS의 CPI 조사에 포함된 법률서비스 가격 자료를 활용해 왔지만, BLS는 자료 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관련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법률서비스 가격 자료를 생산자물가지수(PPI) 조사 결과로 대체하면 PCE 상승률은 현행 산식을 적용했을 때보다 높게 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정책 연구기관 임플로이 아메리카의 비카스 파텔 프로그램 매니저는 소프트웨어와 자산운용 산식 변경에 따른 PCE 상승률 하락 폭이 법률서비스 변경에 따른 상승 폭보다 클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적으로는 근원 PCE 상승률이 기존 산식보다 약 0.2%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이번 개편은 PCE 상승세를 근거로 일부 연준 인사들이 금리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는 민감한 시점에 추진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0.2%포인트 안팎의 변화가 미국 물가의 큰 흐름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물가 상승률은 5년 넘게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웃돌아왔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도 미세한 수치 차이에 매달리지 않겠다며 물가상승률이 2%대인지 3%대인지, 즉 ‘소수점 왼쪽’ 숫자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준 내부에서 금리를 더 올려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는 산식 변경으로 낮아진 수치도 연준의 금리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금리 인상론의 명분을 소폭 약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개편은 경제학자와 투자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의 임명직 인사가 경제 통계에 개입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상황에서 발표됐다. 정치적 개입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다만 BEA가 개편 내용과 근거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항목 선정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개편 시점 자체는 이례적이지 않다. BEA는 매년 9월 과거 5년치 자료를 개정하며, 산식을 바꿀 때도 통상 이 시기에 반영한다. 이번 개편도 같은 절차를 따르고 있다.
다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BEA가 소프트웨어 가격에 적용할 정확한 산식을 공개하지 않았고 자산운용 산식도 사후 수정 폭이 큰 노동시장 자료에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데트마이스터는 “각각의 변경은 무리해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왜 하필 이 세 항목을 골랐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BEA의 코니 오코널 공보책임자는 “이번 결정은 정치 임명직이 아닌 BEA 직업 공무원들이 추계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렸으며, 그 밖의 요인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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