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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찾은 대구간송미술관…천년 문화유산이 전한 '품격 있는 피서'

오마이뉴스
폭염 속 찾은 대구간송미술관…천년 문화유산이 전한 '품격 있는 피서'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놓인 문화재를 막대한 사재를 들여 수집했다. 그에게 문화재는 값비싼 골동품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이자 나라의 혼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당시 거액인 1만 원에 구입한 일화는 그의 신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간송이 지켜낸 것은 해례본 한 점만이 아니다. 고려청자의 걸작과 신윤복·김홍도·정선·김정희의 작품을 비롯해 약 5000점의 문화유산이 그의 손을 거쳐 오늘에 전해졌다. 국보와 보물만도 100건이 넘는다. 간송이 지켜낸 문화유산은 이제 서울을 넘어 대구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여름 폭염 속, 그 문화유산을 만나기 위해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았다.

15일, 대구의 기온은 37도를 기록했다. 밖으로 한 걸음만 내디뎌도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도로 위에서는 열기가 일렁이고, 가로수 잎마저 힘없이 늘어진 채 바람을 기다리는 듯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것은 나만의 피서법 가운데 하나다.

셔틀버스에서 내리자 대구간송미술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낮고 길게 자리한 미술관은 반듯한 직선과 묵직한 회색 벽면으로 단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주변의 잔디와 나무가 공간을 포근하게 감싸고, 앞으로는 팔공산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수묵으로 만난 여름

첫 번째 회화 전시의 주제는 '여름 풍경'이다. 폭염 속에서 들어선 미술관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이 계곡과 산을 그린 그림이라는 점이 반가웠다. 이인상의 <옥류동> 앞에 서자 암벽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금방이라도 물소리가 들려올 듯했다.

<은선대> 역시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이인상은 조선 후기 문인화가답게 화려한 기교보다 자연의 고요함을 담아냈다. 이어 만난 장승업의 <미산이곡>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같은 산수화인데도 먹빛이 한층 짙고 힘이 느껴졌다. 화가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표현된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로웠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강과 물가의 풍경이 이어졌다. 이경윤의 <강호어락>에서는 강가에 앉아 낚시를 즐기는 여유가 전해졌다. 윤두서의 <수탐포어>에서는 물속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림을 잘 몰라도 물가의 시원함만큼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만난 부채그림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김홍도의 <기려원유>에서는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나는 선비의 모습이 정겹다. 작은 부채 안에 먼 길과 넓은 산수가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경승의 <호접탐화>에서는 꽃을 찾아 날아드는 나비가 한여름의 생동감을 전한다.

그림에 담긴 깊은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화가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여름을 담아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바깥세상과 달리 그림 속에는 계곡이 흐르고, 강바람이 불고, 나비가 꽃 사이를 날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한 여름 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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