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위협 피해 호소 필리핀노동자, '이탈'이 아니라 '긴급 피난'이다
충남 보령시의 한 수산업체에서 일하던 필리핀 출신 계절근로자 A씨가 입국 한 달 만에 사업장을 떠났다. 언론은 이것을 "이탈"이라고 보도했다.(관련기사: 입국 한 달 만에 이탈한 외국인노동자... 기숙사 방문엔 흉기 자국 선명) 관리자가 흉기로 기숙사 방문을 찍고 위협했다는 당사자의 신빙성 높은 주장이 함께 실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해 노동자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이게 쓴 것이다.
이 기사를 쓴 이도 나름 피해 노동자의 처지의 부당함을 고발하려는 선의로 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당 기자를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지불식간에 차별적 용어, 피해자를 범죄자로 오인케 하는 용어를 쓰는 우리 사회의 심층적 구조를 지적하는 것이다. 심각한 인권적 사태가 벌어지는 현장을 벗어난 것을 단지 사업장을 "이탈"했다고 쓰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주소이다. 한국인 노동자였다면 쓰지 않았을 단어가 당연한 듯 피해자를 문제 유발자로 오인시킨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한다. "이탈"은 사업주와 관리당국의 시각에서 나온 언어다. 노동자를 특정 사업장에 묶어두는 고용허가제의 논리가 그대로 언어에 박혀 있다. 고용허가제 아래서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장을 벗어나는 순간 불법 체류자가 된다. 폭언을 들어도, 흉기로 위협받아도, 그 자리를 피하면 "이탈자"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구조다.
흉기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피한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긴급 피난"이다. 형법은 자신의 법익을 침해하는 긴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긴급피난으로 인정하고 위법성을 조각한다. A씨가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사업장 이탈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긴급 피난이었다.
몇 해 전 이탈리아 대법원은 판결했다. 굶주린 자가 빵을 훔친 것은 죄가 아니라고. 문명화된 나라에서는 가장 나쁜 사람조차 굶어서는 안 된다고. 이 판결의 핵심은 생존을 위한 행위를 범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존과 안전을 위한 긴급 피난을 "이탈"이라는 언어로 범죄화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상식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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