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농사짓는 사람들이 수몰된 마을에서 한 일

대전광역시 서구 용촌동. 대전 신도심이 자리한 서구에서 보기 드문 미개발지역이다. 정방바을은 비닐하우스 농사로 생계를 영위하는 곳으로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정뱅이'라 부른다. 이 동네에 2024년 7월,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며칠 간 거듭된 비는 물폭탄이 되어 마을 제방을 붕괴시킨다. 순식간에 지역 전체가 수몰된다. 간신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오랫동안 닦아온 터전은 물에 잠겨 폐허로 변하고 만다. 과연 정뱅이는 복구할 수 있을까?
생존의 기록
다큐멘터리 <정뱅이>는 정뱅이 마을이 겪은 미증유의 수해와 생존의 기록, 재난 이후 수난과 재건 과정을 차례로 풀어낸다.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농촌 마을에 들이닥친 재해는 안쓰럽고, 관청의 복구와 구호는 늘 구멍투성이다. 시골이니 고령자가 많을 테고 피해가 온전하게 복원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사회를 겪은 이들에게 일련의 과정과 결과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뉴스로 보면 충분할 일을 굳이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이유는 뭘까?
시작은 마을에 닥친 물난리 고증이다.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개개인에게 수해가 어떻게 체감되었는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막연하게 보도로만 피상적으로 접하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서적으로 겪는 공포와 불안, 두려움은 물론 옥상이나 고지대로 대피해도 피할 수 없는 빗물과 습기는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주민들에게 육체적 한계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 슬리퍼나 맨발에 푹 젖은 채 덜덜 떨며 물이 차오르는 걸 경험한 이가 몇이나 있을까.
그냥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버티면 끝나는 수준이 아니다. 고립된 채 상황은 알 수 없는데, 거리는 물론 사방이 노아의 홍수처럼 물로 뒤덮인 세기말 풍경 앞에 누가 침착할 수 있으랴. 피신할 방도를 찾지 못한 노인들이 최후를 각오하며 필사적으로 구하러 오겠다는 자녀를 뜯어말리던 당시 진술은 죽음을 각오한 이들의 초연함이란 저런 거구나 깨닫게 만든다. 그런 두려움을 종식한 건 숙련된 구조대 역할도 크지만, 무엇보다 '이웃'들의 조력이 컸다.
영화는 그저 극한상황을 전시하고 포장하는 데 그칠 생각이 없다. 상상하기 힘든 수해를 버티고 살아남은 평범한 이들의 사연은 그 자체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손색 없지만, 단지 그들이 겪은 고난과 극복 사연 나열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세밀하게 구출 과정을 소개하며 증언을 빌어 분석을 곁들인다. 어느새 재난 전문가가 자문 겸 스윽 등장해 주민들의 사정에 해박한 '이웃'들의 구조 관련 장점을 해설하기 시작한다. 듣고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부족한 재난 구호,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공동체의 상부상조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불행 중 다행이라 서로 위로하지만,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엔 폐허만 남았다. 수십 년 머물던 보금자리는 며칠 침수된 것만으로 회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금전으로 환산하기 힘든 심리적 상처는 애초부터 논외다. 인생 추억이 깃든 소중한 기록과 소품이 유실된 건 사람들의 마음마저 황량하게 만든다. 삶을 재건해야 하지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생존을 넘어 삶의 복구는 참 멀다.
다행히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물난리다 보니 '특별재난구역' 선포가 되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기대를 건다. 그러나 항상 예산은 부족하다. 복잡한 구호 절차에 따르면 똑같이 수해를 당한 정뱅이 주민들은 조각조각 갈라지게 된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일단 해당 마을에 주소지 등록이 되어야 한다. 마을 풍경의 일부였던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매일 농사짓던 이웃 상당수가 주민 자격에서 배제된다. 42가구 중 28가구만 인정되니 1/3이 제외된 셈이다.
물론 상당 금액이 지원된다 해도, 폭삭 주저앉은 집과 농지를 원상회복하기엔 한참 모자르다. '배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구호' 항목이기에 최소한 기준으로 책정되는 탓이다. 다시 관련 전문가들이 대중의 상식으론 쉽게 와닿지 않는 복잡한 제도와 정책 기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기준 설정은 재난 문제 말고도 공공 행정의 중요한 쟁점일 수밖에 없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지 논쟁은 쉽지 않다.
재난 상황 아니라도 우리는 해당 논쟁을 일상에서 숱하게 목격한다. 무수한 재개발 지역에서 보상금 책정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고, 오랜 이웃이 원수까진 아니라도 의견 대립과 파이 분배 갈등으로 안 보는 사이 되는 건 흔한 일이다. 정뱅이 주민들에게도 그런 시험이 도래한 것. 누군 받고 누군 못받는 난국에 담당 공무원은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읍소한다. 국가 제도에 융통성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 토론은 이어지지만, 결론은 통 나지 않는다.
재난을 공동체 회복의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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