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노동자' 첫 확정 판결…제도화 논쟁 불붙나
배달 라이더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확정됐다. 계약서보다 실제 노동 형태를 중시한 판결로, 플랫폼 노동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동자 여부를 여전히 개별 소송으로 가려야 하는 구조는 그대로여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1부는 지난 3일 라이더 A씨가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및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회사 측이 상고 기한까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배달 라이더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법원 판단이 그대로 확정됐다.
'계약서'보다 '현장' 본 첫 확정 판결…남은 건 제도한 명의 배달 라이더가 회사를 상대로 승소한 개별 사건이지만 노동계는 플랫폼 노동 전반의 기준이 될 판결로 평가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전날 성명을 통해 "배달라이더가 법적으로 노동자라는 것이 최종 확정된 역사적인 날이 됐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계약서 형식이 아니라 실제 노동 형태를 기준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했다는 점이다. 이는 2024년 대법원의 타다 운전기사 판결과 지난 4월 대리운전 배차 알고리즘·수수료를 단체교섭 대상으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과도 같은 흐름으로 평가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지성근 노무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플랫폼 종사자'라는 형식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번 판결은 외형을 떠나 실제 노무 제공 관계를 따져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여전히 개별 소송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지 노무사는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노동자가 소송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문제는 2008년 학습지 교사 사건 등 플랫폼 노동 이전부터 이어져 온 과제"라고 지적했다. 판결이 쌓여도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다음 라이더도 다시 수년간의 소송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노동계 "최저임금 재논의"…업계 "개별 사례일 뿐"
'소송 없는 보호'를 둘러싼 공방은 판결 확정 직후 곧바로 불붙었다. 노동계는 확정 판결을 지렛대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A씨가 속한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부결의 근거가 명백히 사라졌다"며 최저임금위원회의 재심의를 요구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배달 라이더와 대리기사 등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별도 적용안을 부결한 바 있다. 노동계는 당시 부결 논리의 한 축이었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전제가 이번 판결로 흔들렸다고 보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나아가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를 향해서도 하청업체 소속 라이더의 직접 고용을 요구했다.
반면 업계는 이번 판결을 모든 플랫폼 노동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근무시간과 장소를 회사가 정하고, 단체대화방을 통해 배차와 복장까지 지시하며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관리·감독이 강했던 특정 배달대행업체 사례"라며 "다른 플랫폼이나 배달대행업체까지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판결은 '모든 배달 라이더는 노동자'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누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지는 여전히 개별 사건마다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
정부 "기본법 추진"…노동계 "근로기준법 확대가 우선"정부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자성을 개별 소송으로 다투기 전에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보호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 이를 피하려는 현장 대응이 나오기 마련"이라며 "최저선을 법으로 만들어야 보다 폭넓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국회에 발의된 기본법안 8건을 후반기 국회에서 수정 대안으로 논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지난달 채택된 국제노동기구(ILO) 플랫폼 노동 협약 비준을 염두에 두고 관련 제도 정비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선(先)입법 후(後)비준' 기조 아래 협약과 국내법의 충돌 여부를 검토하면서 협약 내용을 기본법과 인공지능기본법 등에 반영하는 방안을 살피고 있다. 알고리즘에 의한 결정의 설명·검토 의무는 인공지능기본법에,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나 별도 입법으로 담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다만 노동부 관계자는 "협약 취지를 반영할 국내 제도 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비준 일정도 구체화할 수 있다"며 "ILO 기본협약 비준에도 수십 년이 걸렸던 만큼 시기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기본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맞선다. 라이더유니온은 "기본법에는 임금과 노동시간, 해고 등 핵심 노동권이 빠져 있다"며 "배달 라이더뿐 아니라 대리운전기사와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 기존 노동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ILO 플랫폼 노동 협약 토론회에서도 같은 쟁점이 제기됐다. 전국대리운전노조 이창배 위원장은 "기본법이 근로기준법 적용을 대신하거나 유예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권리를 이원화하기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정의를 먼저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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