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결혼식장에 선 여고 동창, 왜 울컥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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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청주에 사는 여고 동창의 둘째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남편이 먼저 제안했다.
"결혼식도 가고, 어머니도 뵙고 오자."
늘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남편다운 제안이었다. 친구 아들 결혼식도 챙기고, 시어머니 산소까지 다녀오자는 마음이 고마웠다. 전날 종일 내린 비 덕분인지 공기는 맑았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일요일이라 고속도로도 한산했다. 집을 나선 지 2시간 30분 만에 청주에 도착했다. 우리는 결혼식이 오후 1시 30분이라, 먼저 시어머니가 계신 목련공원으로 향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공원은 초여름의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가족을 만나러 온 듯 묘역을 오가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에 다녀온 뒤 올해는 처음 찾은 길이었다.
남편의 뭉클한 한마디
신기하게도 남편은 어머니를 찾아갈 때마다 표정이 밝아진다. 마치 살아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엄마, 저희 왔어요. 그동안 아버지 옆에서 잘 지내셨지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마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막내아들이 건네던 인사처럼 다정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장녀로 자라서인지 남편처럼 살가운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사진 속 어머니는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남편은 어머니께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답게 들려드렸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준비해 간 막걸리와 포를 재단에 올려놓고, 남편과 함께 정성껏 두 번 절을 올렸다.
"다음에 또 뵐게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예식장 입구에서 만난 친구는 단아한 한복 차림으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친구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넉넉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열여덟 살 여고생 시절을 함께 보냈다. 교복 치마를 맞춰 입고 운동장을 걷던 친구였다.
그 시절 친구는 또래들보다 늘 어른스러웠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는 우리를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친구는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떡볶이를 만들었다. 고추장을 듬뿍 넣어 매콤달콤 끓여낸 떡볶이 맛은 지금 생각해도 어느 유명 떡볶이집 못지않았다. 우리는 땀을 훔치며 떡볶이를 먹고, 미래의 꿈과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평범한 날들이 가장 그리운 추억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였을까. 결혼식장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데 예전 그 여고생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늘 친구들을 챙기던 여고생 소녀는 세월이 흘러 이제 가족을 품어주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친구가 이제 두 아들을 모두 잘 키워 각자의 둥지로 떠나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친구를 바라보는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축하하는 마음이 가장 컸지만 한편으로는 세월의 무게가 실감났다. 분명 얼마 전까지 우리도 누군가의 딸이었는데 어느새 부모가 되었고, 이제는 자녀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가 살아온 시간과 내가 살아온 시간이 겹쳐 보였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날들 그리고 웃었던 날들, 부모를 떠나보내며 견뎌야 했던 시간들, 가족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세월들이 친구의 얼굴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같은 시간을 지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보며 울컥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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