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재민의 실현, 풀뿌리 직접 입법 모델의 제도화

1. 시작하며
우리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여 주권재민을 천명하고 있다. 주권이란 국가의사를 전반적·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고의 권력 또는 권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국민인 우리는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서 주권자임을 실감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이를 체감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장 자크 루소의 다음 말이 더 가슴에 와닿을지도 모른다.
"시민은 오직 의원을 선출하는 동안만 자유롭다. 의원이 일단 선출되면 시민은 그 즉시 노예가 된다."
헌법 제1조 제2항을 이렇게 바꾸어 읽어보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과 국회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과 국회로부터 나온다."
어떤가? 현실은 후자에 훨씬 가깝지 않은가? 냉철하게 직시하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국가의사를 전반적·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주권자인 국민은 정작 국가의사 결정의 자리에서 소외되어 있다. 자크 랑시에르의 말을 빌리면, 오늘날 국민은 '몫 없는 이들'에 가깝다. 헌법상 주권자라는 이름만 가졌을 뿐, 실상 주권자로서의 아무런 몫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국민이 주권자의 진짜 몫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첩경은 국민이 입법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이다. 루소는 입법권을 '국가의 심장'이라 불렀다. 행정권은 대표자가 대신 행사할 수 있지만, 주권의 본질인 입법권만큼은 오직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국민이 입법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가의사를 최종 결정하는 진짜 주권자가 될 수 있다.
국민이 입법권을 직접 행사하는 대표적인 제도적 장치가 바로 '국민발안제'다. 그러나 국민발안제에는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한계와 부작용이 존재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국민발안제의 의의와 문제점을 검토하고, 현행 입법과정의 한계를 짚어본 뒤, 주권재민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풀뿌리 직접 입법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2. 국민발안제의 문제점
(1) 국민발안제의 의의
국민발안제는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특정한 법안을 발의하면 이를 국민투표에 부쳐, 다수가 찬성할 경우 법안을 최종 확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2차 헌법개정 당시, 민의원 선거권자 50만 명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개정 국민발안제'를 도입한 바 있으나 유신헌법 때 폐지되었다. 현재는 헌법은 물론이고 일반 법률에 대해서도 국민발안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다만 조례에 대해서만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을 통해 다소 제한적인 형태로 주민발안제를 채택하고 있을 뿐이다.
(2) 정족수의 문제와 부작용
국민발안제는 대개 상당한 규모의 발안 정족수를 요구한다. 통상 헌법 발안은 100만 명 이상, 법률 발안은 50만 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를 낳는다.
첫째, 개인과 작은 단체의 소외: 개인이나 작은 단체가 수십만 명의 정족수를 충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고도화된 전자청원시스템이 뒷받침된다 하더라도, 인지도·조직력·자금력이 부족한 탓에 50만 명은커녕 5,000명의 동의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국 이러한 정족수는 전국적 규모의 거대 조직만이 충족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국민의 실질적 발안권은 박탈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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