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당한 혁명', 미완의 통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본격화하던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는 시칠리아 원정을 개시한다. 천 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상륙한 가리발디는 신뢰하는 오르시니 대령에게 특별 임무를 맡기고 원정의 성패가 달린 중심도시 팔레르모 입성을 도모한다. 오르시니의 부대에는 시칠리아 출신이나 오래 북부에서 살던 두 사람, 도메니코 트리코와 로사리오 스피탈레가 있다. 모병에 호응해 자원입대했지만, 실은 이탈리아 통일 대의는 안중에 없이 각자 꿍꿍이가 있었다.
리소르지멘토, 이탈리아 통일로 가는 길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우며 지중해 세계와 유럽 대부분을 통합했던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본거지인 이탈리아는 천여 년 넘게 분열과 외세 지배에 시달렸다. 르네상스로 상징되는 부와 문화는 누렸지만, 역으로 이를 탐낸 거듭된 강대국의 침략으로 신음해야 했다. 마키아벨리는 조각조각 쪼개진 이탈리아 상황을 개탄하며 강철 같은 군주가 대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주론'을 집필했고,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주의와 민족자결 열풍이 불어닥친다.
하지만 통일 운동은 단일한 입장과 세력은 아니었다. 북부 상업도시, 중부 교황령, 남부 봉건 왕국 사이 경제·사회 격차는 다른 나라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유럽의 노른자 이탈리아 이권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간섭도 심각했다. 여기에 맞서 통일로 향하는 해법 역시 주도 세력에 따라 천양지차 색깔을 띨 수밖에 없었다. 북부 사르데냐 왕국을 중심으로 한 보수 왕당파 주도의 통일 운동과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세력이 주도한 통일 운동 사이 간극은 컸다.
흔히 역사책에서 이탈리아 '건국 3걸'로 꼽히는 인물 중 파블로 카보우르는 사르데냐 왕국 수상으로 '위로부터 통일'의 설계자, 주세페 마치니와 가리발디가 시민세력의 대표자로 구분된다. 시민세력은 비밀결사를 통해 여러 차례 봉기를 시도하지만, 외세와 결탁한 기존 지배 세력에 번번이 패한다. 이제 주도권은 카보우르가 이끄는 사르데냐 왕국에 넘어간다. 그는 외교술을 발휘해 프랑스에 영토를 할양하는 양보를 끌어낸다. 그렇게 북부는 어렵사리 통합된다.
하지만 중부엔 교황령이 버티고 있었고 우군 프랑스도 로마는 건드리지 못하게 막는다. 남부는 부르본 왕조 양시칠리아왕국이 버티고 있다. 카보우르의 구상은 암초에 부딪힌다. 이때 주세페 가리발디가 활약한다. 고작 천 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시칠리아 상륙을 감행한 것.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만, 봉건제에 신음하던 주민들은 열광적으로 가리발디를 해방자로 받아들인다. 부르본 왕조가 쫓겨난 영토를 사르데냐가 통합하며 오늘날 이탈리아의 원형이 완성된다.
이탈리아 통일의 결정적 분기점, 돋보기로 들여다보기
영화는 이 신화적인 원정, 통일의 결정적 분기점을 배경으로 삼았다. 하지만 '국뽕' 흥건한 장렬한 시대극은 제작진의 관심이 아니다. 가리발디가 붉은 셔츠를 차려입은 의용군과 함께 시칠리아의 중심도시 팔레르모에 무혈 입성하며 해방자란 환호를 듣는 역사적 순간은 그저 소문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축은 가리발디의 작전기동을 은폐하고 적의 주력군을 유인하기 위해 전멸을 각오한 오르시니의 별동대가 겪는 고난에 있다.
역사책에선 가리발디의 위명이 워낙 높아서 마치 홍해가 열리 듯 가는 곳마다 적군은 혼비백산 달아나고 무혈입성한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치밀한 고증과 적절한 각색을 가미한 영화는 실제 시칠리아 원정 상황일지를 재연하듯 매일 전황을 업데이트하며 당시 상황을 관객이 목격하듯 간접체험하도록 이끈다. 남한보다 넓은 이탈리아 남부를 통째 장악한 왕국을 해방하는 여정이 마냥 신화적일 리 없다. 영화는 당시 시칠리아의 복잡한 상황을 실감나게 구현한다.
시칠리아 하면 무엇부터 떠오를까? 영화 좀 보는 이들은 자연스레 '마피아'가 머릿속에 등장할 테다. 당시에도 그랬다. 현대 마피아가 자신들의 기원을 중세 비밀결사, 의적으로 포장하는 것과 딴판으로 시칠리아 마피아는 지주와 귀족의 '마름' 노릇하며 주민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가리발디의 군대가 부르본 왕조에 거듭 승리하자 지역 기득권층은 재빨리 태세를 전환하며 그들의 기존 특권을 보장받길 바란다. 그들은 협력과 원조를 제안하며 의용군을 회유한다.
배경에 가깝게 묘사되는 가리발디 장군 활약상은 영화 속 오르시니 대령이 대신한다.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이라면 이탈리아를 넘어 전 유럽, 라틴아메리카까지 가리지 않던 가리발디의 완벽한 분신인 오르시니는 시칠리아 유력 가문 출신임에도 단호하게 토호세력과 마피아의 제안을 거부한다. 진정한 이탈리아 통일은 빈곤에 허덕이는 시칠리아 민중의 열망을 실현하는 것에서부터 실현된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기득권 집단의 이해와 반한다.
상상력이 역사의 여백을 채우다, 평범한 이들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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