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화웨이의 파트너...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라"

전 세계의 인공지능(AI) 열풍이 거세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의 엔비디아, 중국의 화웨이를 주요 거래처로 두고 있는 일본의 글로벌 강소기업 '산텍(Santec Holdings)'. 1979년에 만들어진 이 회사는 파장가변 레이저와 광계측기, 광부품을 만드는 '광(光)기술' 기업이다. 미국·캐나다·호주 등 세계 9개 나라의 거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임직원은 427명,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이 79%에 달한다.
산텍은 1984년 광섬유 자동검사시스템을 만들어 광통신 사업에 진출했고, 1988년에는 세계 최초의 상용 광대역 파장가변 반도체 레이저 광원 'TSL-80'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이후 7세대까지 개량을 거듭하며 40년 가까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세계의 대학·연구기관과 광통신 제조사들이 쓰는 표준 장비다.
2008년에는 세계 최초의 파장주사형(SS) OCT 진단장치용 광원을 공급했다. 이 기술을 안과로 넓혀 개발한 백내장 수술용 안구 생체계측기 '아르고스(ARGOS)'는 2019년부터 글로벌 안과 1위 기업인 알콘(Alcon)과 제휴해 전 세계에 독점 유통하고 있다. 이처럼 산텍의 힘은 '세계에 없는 것'을 만들어온 이력에서 나온다. 경쟁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연구하고 매진한 결과다.
실적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1년 매출은 315억 엔(약 28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1% 늘었고, 영업 이익률은 32.8%에 달했다. 5년 연속 사상 최고 이익을 경신하고 있다. 이같은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의 '광화(光化)'가 있다. 데이터센터 내부 통신을 구리선에서 광섬유로 바꾸는 흐름이 빨라지면서, 광부품과 이를 검사하는 측정기 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금광시대 곡괭이 장수'로 평가받는 산텍에 대해 <일본경제신문>은 "미국 테크기업들도 의존하는 광측정기 회사"라고 소개했다.
실적만큼이나 주식시장의 평가도 '레벨 업'되고 있다. 2025년 4월 주당 3375엔이던 주가는 2026년 5월 14일 사상 최고가인 3만4700엔을 찍어 1년만에 10배가량 올랐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도쿄증권 스탠다드 시장 주요 기업들(시가총액 500억 엔 이상) 가운데 산텍이 주가 상승률 4위를 기록했다. 시가총액이 한때 3500억 엔(3조 2000억 원)을 넘어섰고, 7월 중순 현재 약 2000억 엔(1조 8000억 원) 수준이다.
재일동포 기업사의 새로운 역사 '산텍(Santec)'
창사 반세기에 육박하는 '산텍'은 재일동포 기업사(史)의 새로운 장을 써내려갔고, 현재 진행형이다. 그 중심에는 재일동포 2세인 창업주 정희승(鄭熙承·88세) 명예회장이 있다. 그는 80세를 넘긴 2021년 즈음까지 현역으로 일하다가 물러났다. 산텍을 만들고 40년 넘게 이끌어 온 정 회장의 인생 역정과 기업 경영철학이 궁금했다. 산텍의 눈부신 성장과 맞물려 있는 또다른 세계에 관한 궁금증이었다. 그건 정 회장의 인생사와 산텍의 기업사가 교차하는 지점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4월 14일 서울에서, 7월 13·14일 일본 아이치 현 고마키 시에 있는 산텍 본사에서 정희승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산텍 본사의 정식 명칭은 광(光)기술을 강조한 '포토닉스 밸리 오쿠사 캠퍼스'(Photonics Valley Ohkusa Campus)다. 2001년에 준공했고, 애초부터 연구개발·생산·경영 기능을 한곳에 모은 복합 캠퍼스로 기획했다. 산텍이 나스닥재팬(현 JASDAQ)에 상장한 것도 이때다.
25년 전에 준공한 산텍의 오쿠사 캠퍼스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높은 층고가 주는 시원함, 크고 작은 수많은 회의실, 라운드형 개인 업무 책상, 오픈 키친처럼 안이 들여다보이는 연구개발실, 적절한 휴게 공간 등이 조화를 이룬다. 기능을 잘 살리면서도 세련됐다. 회의실마다 런던, 파리, 마드리드처럼 세계의 유명 도시 이름을 붙인 게 눈길을 끌었다. 25년 전에 이런 식의 공간을 구상했다는 게 놀라웠다.
"1만3500평의 땅을 구하고, 나고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우라노 설계'라는 회사에 맡겼어요. '20년 후에도 평가받을 수 있는 자존심 있는 설계'를 주문했지요. 당시 첨단 설계를 위해 실리콘밸리도 다녀왔는데 정작 그곳에는 그닥 좋은 건물이 없었다네요. 땅값을 제외하고 건축비만 600억 원가량 들었어요. 업무용 가구에만 15억 원을 썼어요. 일본 건축전문지 <근대건축(近代建築)>(2002년 1월호)에도 소개됐어요."
세계를 무대로 한 기업답게 산텍은 인도, 중국, 대만, 싱가포르, 독일, 영국, 폴란드, 캐나다 등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외국인 직원의 비율은 20%가량. 다국적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만큼 업무 소통은 물론 임원회의도 영어로 진행된다. 교차 통역도 필요 없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는 회사의 방향성과도 부합한다. 본사 정규직은 350명 정도이고, 임시직까지 합하면 1000명 안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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