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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코발트광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참혹한 현장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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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코발트광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참혹한 현장

AI 통합 요약

외교부가 12일 도쿄에서 미국·일본과 한반도 비핵화를 재확인하는 협의를 개최한 가운데, 북한은 이재명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발표한 한·EU 공동성명을 국가 주권 침해로 맹렬히 비판했다. 북한은 자신의 핵 보유 지위와 북러 군사협력을 문제 삼은 것에 반발하며 한국을 영구적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대립 방침이 변함없을 것을 밝혔다.

중도 성향: 한미일 협의의 구체적 참석자·내용·목표(비핵화·UN결의 이행)를 균형있게 전달하면서 북한의 반발을 함께 객관적으로 보도한다.

보수 성향: 북한의 강경한 적대 의지와 '불변의 적국' 규정, '주권침해' 주장 등을 강조하며 북한의 호전적 태도를 부각한다.

지난 주말에는 국립순천대학교 10·19연구소에서 진행한 평화기행으로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지를 답사하는 '10·19사건 유적지 다크투어'에 참가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 대표적인 장소이다.

세계적으로도 광산에서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은 드물 것이다. 경산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현장이 코발트 광산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출발 전부터 의문이 들었다.

1948년 정부는 좌익 세력을 차단하고 전향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보도연맹을 결성했다. 보도연맹 소속원은 '과거 좌익 운동에 관여했던 자'였으나, 실적 위주의 강제 할당 방식으로 인해 이념과 상관없이 민간인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입되었다.

전쟁 직전 가입자 수는 전국적으로 약 3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권은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군에 동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전면적인 예비검속(사전 검거)을 단행하였다. 결국 상당수가 학살 당했고, 그 대표적인 장소가 경산 코발트 광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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