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의 지도, 북반구를 넘어섰다

한국 외교의 지도에서 남반구는 오랫동안 주변부였다.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간 사실상 '북반구 국가'로 사고하고 행동해 왔다. 우리의 외교와 경제는 미·중·일·러 4강을 비롯해 미국, 유럽, 동북아라는 북반구 축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7월 이재명 대통령의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ABC 3개국 순방은 한국 외교의 정신적 지도가 북반구를 넘어 지구 전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2010년대 초반,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으로 브라질 상파울루에 머물던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 한국 미디어가 담아내던 중남미는 두 갈래였다.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 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끊이지 않는 '지구 대척점의 변방'이었다.
그러나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벨리스크 광장에서, 그리고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의 열기 속에서 직접 목도한 라틴아메리카는 달랐다. 선진국들이 그어놓은 고정관념의 틀보다 훨씬 역동적이었고,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빚어내는 거대한 '하이브리드 문명'의 현장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남미로 향한 것은 비행기의 항로만 바뀐 것이 아니다. 이번 순방의 가장 큰 의미는 몇 건의 양해각서(MOU) 체결이나 당장 손에 쥐어질 경제적 셈법에 있지 않다. 한국 외교가 비로소 세계를 '북반구'가 아닌 '지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21세기 후반부의 세계 질서는 서구 및 동북아의 선진국 50여 개를 뜻하는 '글로벌 노스'에 대한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의 길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도의 남반구를 중시하는 시각의 대전환이야말로 이번 순방이 남긴 최고의 외교적 자산이다.
김영삼의 '시장', 노무현의 '자원', 그리고 이재명의 '글로벌 사우스'
한국 정상의 남미 방문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역대 정부의 남미 외교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진화해 왔다. 1996년 9월 김영삼 대통령은 최초로 중남미 5개국을 순방하며 세계화와 신시장 개척의 물꼬를 텄다. 당시 브라질의 카르도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김 대통령은 귀국 직후 외무부에 중남미 전담국을 신설했다. 기존의 미주국에서 분리해 전담 '중남미국'을 신설한 이 조치는, 중남미 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분기점이다.
이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만나 자수성가형 리더로서 깊은 동지 의식을 나누며 자원 외교와 경제 협력을 본격화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2008년 룰라와 정상회담을 갖고 주요 20개국(G20) 무대 등에서 금융위기 극복과 실질 협력을 논의했다. 2026년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순방은 맥락이 다르다. 김영삼 대통령은 남미의 '시장'을 보러 갔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원'을 보러 갔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질서 속의 '글로벌 사우스'를 만나러 갔다.
오늘날의 남미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리튬·구리·희토류 같은 핵심 광물과 식량 안보, 공급망 재편의 핵심 요충지다. 나아가 브릭스(BRICS)의 확대와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이라는 국제정치학적 대변혁의 중심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명분보다 실리를,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시해 온 실용주의 정치인으로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 시점에 남미로 향한 포석은 명확하다. 미·중 대립으로 인한 진영 선택의 압박 속에서 남미 ABC 3국은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줄 최적의 우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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