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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린 친정팀에 완투승한 투수...'귀빈석' 앞으로 달려간 까닭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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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린 친정팀에 완투승한 투수...'귀빈석' 앞으로 달려간 까닭

"포수의 위치에 박스를 놓아 정확한 스트라이크 존을 만든 다음, 직구와 슬라이더, 싱커의 위치에 불붙인 담배를 한 개비씩 세워두었다. 마운드에 선 임호균은 침착한 눈빛으로 담배를 응시했고 차례차례, 바깥쪽과 가운데, 몸 안쪽의 순으로 공을 던졌다. 샤악, 위익, 스윽. 놀랍게도 침을 발라 세워둔 담배는 쓰러지지 않고, 끄트머리 담뱃불만 모두 꺼져 있었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임호균이라는 투수를 묘사하는 대목이다. 인천의 오랜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종의 도시전설에 소설가가 약간 덧칠을 한 문장,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엉뚱한 질문을 마주한 임호균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나도 얘기를 들었어. 소설엔 그렇게까지는 안 쓴 것 같은데, 옛날에 인천에서는 별 이야기가 다 있었어. 누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걸 내가 공을 던져서 불만 껐다는 얘기도 있었고. 또 성냥을 세워놓고 공을 던져서 불을 붙였다는 얘기도 있었고. 사실은 뭐 … 불까지 붙인 건 아니고, 선배들이 해보라니까 하긴 했었지. 허허."

"예? 그럼 실제로 해보긴 하셨어요? 담배 맞히기를요?"

"선배들이, 홈 플레이트 위에 양쪽 끝에 담배를 세워놓고 맞혀보라고 해서 해본 적이 있어. 뭐 그건 장난이었지만, 연습으로 비슷하게 하기도 했지. 홈 플레이트 위에 가로로 나란히 공을 올려놓으면 6개가 들어가는데, 양쪽 끝에 반 개씩 걸쳐놓으면 7개가 되지. 그렇게 세워놓고 마운드에서 공을 던져서 한쪽 끝부터 차례로 맞혀서 쳐내는 거야. 그렇게 스트라이크 존을 익히는 연습을 했지."

제구의 달인

1974년 8월 2일. 부산에서 열린 화랑기 고교야구대회 8강전에서 인천고가 휘문고를 1대 0으로 누르고 승리했다. 그날 인천고 투수는 볼넷 하나를 내주었을 뿐 단 하나의 안타도 맞지 않았다. 그리고 10월 4일에는 대구에서 열린 국회의장배 고교야구대회 준결승에서 대구상고를 상대로 인천고는 다시 한번 1대 0의 승리를 거두었고, 그날도 투수가 볼넷 두 개만을 내주고 27명의 타자를 잡아낸 덕이었다. 두 달 사이에 작성된 두 번의 노히트노런. 그것도 당대 최강팀 휘문고와 대구상고를 상대로 한 완벽투. 그 주인공이 바로 임호균이었다.

"밤에, 혼자 눈을 감고 공을 던지는 연습을 많이 했어.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스트라이크존을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공을 넣고 싶은 지점을 떠올리면서 공을 던졌어. 처음에는 말도 안 되게 빗나갔지만, 계속하다 보니 스트라이크존의 경계가 그려지더라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마음먹은 대로 그 경계선상에 넣을 수 있게 됐지."

임호균이 던지는 경기에서 중반이 넘어갈 때쯤, 심판은 자신이 설정한 스트라이크존이 지나치게 넓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하곤 했다. 임호균은 심판이 설정한 경계선상을 끊임없이 공략하며 확인하고, 또 모호한 경계를 조금씩 잡아 늘렸기 때문이다.

"중반쯤 되면, 더그아웃으로 들어갈 때 주심이 슬쩍 다가와서 그래. '야 이 녀석아, 그만 좀 해라' 라고. 자기 눈을 그만 좀 현혹시키라는 얘기였지."

1950년대는 인천야구의 전성기였다. 인천고와 동산고가 맞붙는 경인지역예선은 전국대회 본선보다도 경쟁이 치열했고, 그 관문을 뚫은 학교가 가볍게 전국대회 우승컵을 챙기곤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짙은 암흑기가 시작됐고, 전국대회 4강에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세월이 이어졌다. 중국과의 교역로가 막힌 인천이 국제항으로서의 매력을 잃으며 경제적으로 뒷걸음질 치게 된 것과 동시에 간간이 발굴되는 유망주들도 전철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된 서울로 유출되곤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서울의 학교들이 야구에서도 중심적 지위를 확고히 했고, 섬유산업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과 정치적 배경을 등에 업고 급성장하던 대구 지역의 학교들이 다른 한 축을 형성했다.

하지만 야구협회의 고위직들과 실업 및 고교팀의 지도자들은 상당수가 과거 전성기에 인천이 배출한 인물들이었고, 그들에게 선배들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는 후배들은 늘 안타깝고 아쉬운 존재였다. 그런 마당에 인천에서 전국적인 수준의 투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말하자면 자손이 없어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명문대가에 태어난 옥동자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쇠락한 야구도시, 인천의 옥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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