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도 모자라 두 명이?" 사내 부부 단축근무에 쏟아진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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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수목원은 초록이 절정이었다. 주말, 아이와 함께 '오감으로 깨우는 숲체험'에 참여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오디와 버찌를 입으로 먹어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시간. 그렇게 오감을 열어가던 중 숲해설사 선생님이 멈춰 섰다.
"저기, 물까치예요."
청회색 날개를 가진 새 무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물까치는 한 마을이 새끼를 함께 키워요. 우리도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며칠 전부터 품고 있던 질문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까치의 공동육아
우리 기관에 사내부부가 있다. 맞벌이 부부이고, 아이가 하나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둘 다 복직했는데, 지금은 부부가 동시에 단축근무 중이다. 동일한 자녀에 대해 부부가 각자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 덕분이다.
반응은 엇갈렸다.
"한 명도 모자라 두 명이 동시에 쓰는 게 말이 되느냐? 솔직히 밉상이다"라고 소곤거리는 쪽이 있다. 반면 "그게 바로 우리 기관 최대 복지가 아니겠느냐? 명분도 있고 실리도 있고, 재정적 지원 대신 시간적 지원을 해줄 수 있다면 안 해줄 이유가 있느냐"는 쪽도 있다.
나는 처음엔 솔직히 전자에 가까웠다. 한 명의 아이인데, 두 명이 동시에 제도를 쓰는 건 좀 과하지 않나?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한 건 그 생각이었다. 그 아이의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이 같은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반으로 줄어드는 건 아니지 않은가. 부부가 우연히 같은 곳에 다닐 뿐이고, 아이에게 필요한 돌봄의 총량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딘가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나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있었다.
비단 직장 안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아이들 집단은 엄마들의 친분과 네트워크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그 첫 번째 기준이 전업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의 엄마들 중엔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집단도 있다. 첫째가 학교를 다니고 둘째가 유치원을 다니는 집들끼리, 둘째 유치원 셔틀버스를 기다려 주는 건 한 아이 엄마가, 첫째 학교 등교을 함께 해주는 건 다른 아이 엄마가 맡는 식이다. 이처럼 전업인 엄마들은 시간대가 맞고 관심사도 자연스레 겹치다 보니 공동육아의 네트워크가 쉽게 만들어진다. 반면, 워킹맘은 그 무리에 끼기 쉽지 않다.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대화의 결이 조금 달라서이기도 하다.
묘한 건 그 안에서 내가 갖게 되는 이중심리다. 직장 안에서는 육아시간을 쓰면서 그것을 쓰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죄책감이 든다. 그런데 직장 밖으로 나오면 이번엔 반대다. 정보와 심리적 공감을 함께 나누는 엄마들 무리 바깥에 서서, 내가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그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피해의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직장 안에서는 가해자, 직장 밖에서는 피해자. 같은 사람이 하루에도 두 개의 얼굴을 쓰는 셈이다.
뻐꾸기의 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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