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차' 마시며 본 그림 한 점, 뼈가 다 시립니다

비구름이 한바탕 휩쓸고 가더니 그 자리를 무더위가 꿰찼습니다. 날이 이토록 뜨거워지니 차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얼음으로 찻잎을 우리는 '코오리다시(氷出し)'가 인기입니다.
얼음이 주변 열기를 빼앗아 천천히 녹으며 차의 성분을 뽑아내는 방식입니다. 열에 쫓기지 않고 찻잎의 가장 맑은 단물만 뽑아내는 느긋한 미학이랄까요. 폭염이 쏟아지는 날엔 이 고요하고 서늘한 기다림이 참 간절해집니다.
뙤약볕 쏟아지는 산을 오르기 전에 '얼음차'를 세팅했습니다. 코오리다시(氷出し)는 원래 옥로나 센차 같은 일본 녹차로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러 동글동글 말린 삼림계 우롱을 골랐습니다. 얼음이 천천히 녹는 동안 작은 구슬 같던 찻잎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연둣빛 물이 찰랑찰랑
바닥에 삼림계 우롱 찻잎을 깔고 투명하고 단단한 얼음을 수북하게 올려 저만의 작은 빙산을 만들었죠. 산행을 마치고 땀 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이 얼음이 다 녹아 제게 완벽한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건 꽤 고된 일이었지만, 문득 나뭇잎 그늘 사이로 불어오는 짙고 푸른 숲의 향기는 산을 오르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압도적인 상쾌함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수북했던 얼음은 마법처럼 다 녹아 있었습니다. 찻잎이 원래 모습을 찾으며 내어준 맑은 연둣빛 수색이 찰랑거렸죠. 조심스레 한 모금 머금어 보니, 가장 먼저 시원함이 반가웠습니다. 이어서 묵직한 초록의 감칠맛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고 쌉쌀한 단맛이 빈자리를 채워줍니다.
목으로 넘기고 났을 때의 기분 좋은 회감(回甘)은 유난히 상쾌했어요. 차가운 얼음으로 아주 오랜 시간 진득하게 우려낸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산을 오르며 들이마셨던 시원한 숲의 향기가 찻잔 속에서 생생하게 오마주 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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