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이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모이는 이유

넉 달 째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길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일까. 또 삶과는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태초에 생겨난 길이 단순히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면, 지금은 소통과 수단으로서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싶다. 물리적 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넘어서, 인생의 과정을 표현하는 넓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하며, 아직도 건강하다는 증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국에는 수많은 둘레길이 있다. 각 지역마다 특색을 살린 둘레길은 여행자의 입맛에 맞게 설계돼 있어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특징이다. 지리산둘레길 역시 우리나라 제일 명산인 지리산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한 번 쯤 걸어보고 싶은 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매주 토요걷기 참여자의 지역을 살펴보면, 서울과 경기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동참하고 있다. 어떤 이는 시간 문제로 1박 2일 여정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 13일, 지리산둘레길 '대축~서당' 구간 토요걷기에 나섰다. 이 구간은 13.4km로 난이도는 중간 정도에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 마을 골목길을 시작으로 숲길을 지나고 임도도 걷는다. 대축마을 문암송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보는 악양면 평사리 들녘은 풍요로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먹점재에서 미동가는 길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을 볼 수 있다. 2021년 2월 발생한 하동 미점리 구재봉 산불 현장을 지나치는 길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갓논(갓처럼 옹색한 작은 논)을 보면서 끈질긴 삶의 현장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하동 '3무' 들녘을 바라보며
대축마을에서 10여 분 오르니 문암정과 문암송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문암송은 소나무 씨앗이 문암이라는 바위에 뿌리를 내려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눈앞 멀리 형제봉 아래 산자락은 소나무 재선충으로 붉게 물든 모습이 안타깝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들녘은 풍요롭고, 넉넉하고, 여유롭다. 평사리는 전봇대, 전깃줄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없는, '하동 3무(無)' 들녘으로, 거치적 거리는 게 없어 사진 촬영에도 좋은 장소로 인기가 있다.
숲길로 접어드니 밤꽃에서 나는 향기(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밤꽃 향은 5~6월경 피는 밤나무 수꽃나무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다. 미점 갈림길에서 잠시 쉬어간다. 숲속 길에서 나오니 앞이 탁 트인 전망이 환상적인 풍경이다. 좌우로 길게 쭉 뻗은 능선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우측으로는 광양 제일 명산인 백운산이, 좌측 끄트머리는 암벽으로 된 억불봉이 주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산중턱으로 내려오니 섬진강이 눈앞으로 흐른다.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 자락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 째로 긴 강이다. 흔히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 섬진강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해 옴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나는 섬진강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떠올라 눈시울을 적신다. 지리산둘레길이 지나는 이 일대는 2021년 2월 21일 발생한 구재봉 산불로 큰 피해를 남겼다. 큰 나무는 볼 수도 없고, 키 작은 잡목과 잡풀만 무성한 모습으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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