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 것이 살아남는 일이라면, 기억은 누구의 몫인가

오는 2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하는〈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재난 이후의 기억을 다루지만,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성 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기억하라"는 말이 때로는 생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무대는 기억과 망각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잊고 싶은 사람과 끝까지 기억하려는 사람,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지워진 사람을 한자리에 세워 놓고 이렇게 되묻는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정말 함께 감당하고 있는가?"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로아의 동명 소설을 장윤하가 각색·연출한 이 작품은 하천 산책로와 학교의 작은 미술실, 하수구 아래의 다른 세계를 오간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설정은 낯설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구체적이다. 참사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연서, 진상 규명과 추모 활동을 멈출 수 없는 호정, 가벼운 농담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는 혜민,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재선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 이후'를 살아간다.
기억을 먹고 자라는 나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기억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 하수구 아래 세계의 열매를 먹으면 마음은 편안해지지만 기억 하나가 사라진다. 잊은 기억은 나무의 일부가 되고, 나무가 커질수록 지상으로 돌아가는 통로는 막힌다.
이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 장치가 아니다. 망각이 주는 안도와 그 대가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꾼다. 잊으면 고통은 옅어진다. 그러나 고통과 연결돼 있던 사람과 관계,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감각까지 함께 지워질 수 있다.
작품은 나무를 통해 기억을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몸과 공간의 문제로 확장한다. 기억은 머릿속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막고, 사람을 고립시키며, 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물질이 된다. 이 판타지가 효과적인 것은 현실의 서사와 맞물릴 때다. 학교에서 철거된 추모 게시판, 창고에 처박힌 기록물, 사라진 미술실 열쇠와 캠코더는 모두 한때 존재했지만 치워지고 잊힌 것들이다. 지하의 거대한 나무와 학교 창고의 망가진 게시판은 서로 다른 물건처럼 보이지만 같은 기능을 한다. 기억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는 세계의 태도를 드러낸다.
장윤하의 연출은 현실과 지하 세계를 뚜렷하게 갈라놓기보다 겹쳐 보이게 한다. 하천 다리에서 나눈 약속이 지하에서 되살아나고, 과거의 대사가 현재의 인물에게 다시 들린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기억이 그렇듯 한 장면은 다른 장면을 불러오고, 이미 지나간 말은 뒤늦게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특히 후반부 아이들이 재선의 존재를 기억해내는 과정은 추리극의 해답을 제시하는 장면이 아니다. 비 오던 날의 통화, 미술실 열쇠, 캠코더와 길고양이의 이름처럼 흩어져 있던 감각이 이어지며 잊힌 한 사람의 형체가 돌아오는 순간이다.
다만 중반부에는 참사와 추모제, 학교의 대응, 친구들 사이의 갈등, 재선의 실종에 관한 정보가 짧은 시간에 밀려든다. 대사로 전달되는 설명이 많아지면서 인물의 감정이 잠시 서사에 눌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후반부 '나무를 뽑는' 행동으로 이야기가 수렴하면서 작품은 다시 강한 무대적 힘을 얻는다. 설명되던 기억이 배우들의 몸으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연서는 이 작품의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몸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상담을 받고 약을 먹지만, 아버지는 약을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과 생활 습관을 강조하는 영상을 보낸다. "떨쳐내고 미래로 전진하라"는 말 앞에서 연서는 외친다.
"나는 꽃이 아니라 사람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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