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로 환생한 어머니...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이었을까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사단법인 숲길이 주관하는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가 반을 넘어서면서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총 21개 구간에서 12개 구간을 걸었다. 지리산은 단순한 자연 생태계적 산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품은 삶의 흔적이 담긴 산이다. 마을이 생기게 된 오래된 전설에서부터,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적 장소까지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지리산둘레길은 숲길, 임도, 농로, 마을안길, 그리고 강변길을 품었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게 길이다. 길이 곧 삶인 것이다. 그 길을, 아니 그 삶의 흔적을, 따라가는 지리산둘레길이다.
지난 5월 30일, 지리산둘레길 가탄~원부춘 구간 11.4km를 걸었다. 이 구간은 산자락을 끼고 도는 하동 녹차 밭이 펼쳐져 있다. 농부의 부지런한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차밭 정상에 있는 정금정에서 화개천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 오죽하면 이곳이 하동 사진 찍기 좋은 핫 플레이스라고 할까. 정금정을 지나서는 세 시간 이상 급경사를 올라야만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 21개 구간 중 난이도가 최상급에 속하는 코스 중 하나다. 길은 마을 길, 임도, 숲속 길 그리고 임도가 번갈아 나타나며 지루함을 달래준다.
출발지인 화개중학교 주차장 주변으로는 화개십리벚꽃길이 나 있다. 벚꽃 피는 계절이면 벚꽃나무 꽃비를 맞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가탄교에 이르니 화개천에서 낚시하는 강태공의 모습이 유유자적하다. 은어낚시에 푹 빠져 있다. 은어는 6~8월 사이 수박 향이 진하게 나는 물고기로, 이맘때 하동 은어 맛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재첩국, 참게탕 그리고 녹차는 하동의 명물로 꼽힌다.
가탄마을에 이르니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한자로 '길가(吉佳)' 슈퍼라 이름 지은 작은 가게다. 말 그대로 길가에 있는 가게로, 주인장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간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면, 특히 시골에서 오래된 간판을 가끔 볼 수가 있다. 그런 간판에서 느끼는 고향의 정취 같은 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글씨체나 미적인 감각은 시대에 뒤떨어진다지만, 나는 왠지 낡고 오래된 그런 모습에 끌린다. 단순히 사라져 가는 것들이 아닌, 그 안에 우리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기에.
시골 오래된 간판에서 느끼는 숨은 삶의 흔적
시작점부터 오르막이 계속되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1시간 만에 대비마을에 도착했다. 구전설화에 의하면 김해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지리산 운상원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왕자들의 어머니 허황후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이곳에 대비사를 세웠는데, 그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아들들은 후에 도를 깨우쳐 부처가 되었고, 그곳이 지금의 칠불사다. 칠불사는 지리산 토끼봉 아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 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 따뜻하다는, '아(亞)'자 방으로 유명하다. 사찰을 찾는 여행자라면 꼭 들러 보기를 권한다.
대비마을 아래쪽 하동야생차 소공인복합지원센터 앞으로는 천년다향길이 나 있다. 여기서는 지리산둘레길과 천년다향길이 겹쳐져 있다. 천년다향길은 차유통센터(정금마을), 정금차밭, 도심마을(도심다원, 유로제다), 신촌마을, 혜림농원, 그리고 차시배지로 이어지는 2코스로 거리는 4km다. 오르막을 오르니 멀리 언덕에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정금정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화개천 아래로 펼쳐진 풍경이 천상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아쉽다. 녹차나무를 덮어씌운 검은색 차광막 때문이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으니 강한 햇볕을 받으면 잎이 두껍고 딱딱해지기 때문이란다. 어딜 가든 늘 아쉬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깨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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