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0만달러 메타 간부도 잘렸다…'자기 일 자동화' 내몰린 실리콘밸리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연봉 50만달러를 받으며 보모 두 명을 고용하고 장애가 있는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메타의 중간 간부 수전 스미스는 네 차례 감원에서 살아남았지만 지난 5월 결국 해고됐다. 회사가 관리자들에게 인공지능(AI)을 실제 팀원처럼 다루고 직원들의 AI 활용도를 끌어올리라고 요구하던 시기였다.
20년 가까이 기술업계에서 일한 스미스에게 실리콘밸리는 한때 미국 경제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안전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지원서를 낸 회사들로부터 좀처럼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20년 메타에서 해고된 디자이너 출신 전 남편은 결국 디자이너로 재취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창고에서 상자를 나르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스미스의 사례가 실리콘밸리 전반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한 단면이라고 보도했다. AI 경쟁과 연쇄 감원 속에서 고액연봉 기술직들이 다른 사무직 노동자에게 닥칠 미래를 먼저 겪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기업 경영진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변호사, 인사 담당자들에게 AI 전환의 최전선에 서라고 주문하고 있다. 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얼마나 빨리 자동화하고 AI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평가받는 동시에 동료들이 잇따라 감원 대상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감원 집계 사이트 레이오프스.fyi에 따르면 2022년 이후 해고된 기술업계 종사자는 80만명을 넘는다. 최근에도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아마존 등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기술 분야 창업가 아닐 대시는 이들을 “기술기업들이 다른 직군에도 밀어붙일 변화를 먼저 겪는 실험대”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고용 불안은 기술업계가 쇠퇴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지표만 보면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미국 경제의 승자다. 기술주는 15년 가까이 상승세를 이어왔고 오픈AI와 앤스로픽 등 AI 기업들은 천문학적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기술기업의 상장 붐 때와 달리 이번 AI 붐의 보상은 훨씬 소수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고소득자인 기술업계 종사자들까지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이유다.
노동시장 연구자들은 현재 기술업계 종사자들의 처지를 과거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의 쇠퇴에 빗댄다. 20세기 중후반 자동차 노동자는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 지역사회 내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도입된 산업용 로봇이 1970년대 이후 용접·도장 등 반복 공정으로 확대되면서 두 세대에 걸쳐 안정적 일자리의 지위를 잃어갔다.
자동화만으로 자동차 노동자의 쇠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조지타운대 역사학자 조지프 매카틴은 AI가 사무직을 흔드는 속도가 과거 생산공정 자동화가 자동차 노동자를 밀어낸 속도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시립대 노동사회학자 루스 밀크먼은 기술업계 종사자들이 저임금 노동자들이 오래 겪어온 고용 불안과 일의 자율성 상실을 이제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AI 활용을 압박하는 움직임은 이미 인사평가에까지 번졌다. 메타와 아마존, AI 반도체 스타트업 세레브라스 등은 직원별 AI 사용량을 도표로 만들어 비교하거나 인사평가에 반영했다. 다만 AI 사용 비용이 급증하자 일부 기업은 이런 사용 독려를 완화하고 있다.
메타에서 직원 복지와 안전 업무를 맡았던 심리학 박사 아네케 버폰은 오류가 너무 많아 AI가 한 작업을 사람이 다시 해야 할 정도인 도구의 비효율을 지적했지만 상사들은 “계속 쓰면 나아질 것”이라며 사용을 독려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이 빨라진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AI가 내놓은 결과의 오류를 확인하고 수정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난도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래밍하는 능력으로 높은 보수와 자부심을 얻어온 개발자들도 흔들리고 있다. 자동 코딩 도구가 확산하면서 어렵게 쌓은 전문성이 앞으로는 지금과 같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다만 모든 기술기업의 감원이 AI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근 감원에는 코로나19 이후 과잉 채용의 후유증도 섞여 있고, 정보산업의 채용이 간헐적으로 늘어난 흐름도 나타났다.
그럼에도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는 구조적 변화의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연구기관 버닝글래스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정보산업의 노동시간은 2022년 이후 줄었지만 경제적 산출은 연평균 약 8% 증가했다. 가드 레바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산출은 늘지만 고용 인원은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것이 기술·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무직의 새로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메타에서 해고된 스미스는 구직을 이어가는 한편 교회 지도자들이 AI를 활용해 업무 방식을 개선하도록 돕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로 돌아가고 싶은지, 돌아갈 수는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믿어온 실리콘밸리의 성공 신화가 무너졌다며 “황제는 벌거벗었다”고 WP에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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