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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전시하고 희생자는 지워버린 '전쟁 기념관'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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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전시하고 희생자는 지워버린 '전쟁 기념관'의 현실

넘어서기 힘든 거대하고 견고한 벽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이따금 기도를 올린다. 기도는 저마다의 간절함으로 쌓아 올린 마음이자 의지인데, 나아가려는 행동이자 불의에 맞서는 저항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기도는 때로 현실의 도구나 차가운 전략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여러 사람의 기도가 모이면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퐁니 마을의 응우옌티탄(아래 퐁니 탄)과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아래 하미 탄)도 서울 봉은사에 들러 기도를 올렸다. 거대한 미륵불 앞에서 합장한 다음, 초에 '진실을 인정하다(thừa nhận sự thật)'라는 소원을 적어 공양했다. 두 사람은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학살 사건의 피해생존자이다.

1968년 2월 퐁니·퐁녓 마을에서 74명이, 하미 마을에서 135명이 한국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은 1965년부터 베트남 중부 5개 성에 전투 부대를 파병했는데, 이듬해부터 주둔 지역에서 130여 건의 학살을 벌여 1만여 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두 응우옌티탄을 비롯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피해생존자들은 오랜 기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진상 규명과 사죄를 요구해 왔다. 그때마다 한국 정부는 외면과 묵인, 가해 기억의 삭제와 전쟁 기억의 미화로 일관했다. 퐁니 탄과 하미 탄이 초에 새긴 기도는 침묵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저항이자, 책임 있는 조치와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이며, 현행 전쟁 기억 방식을 재고하라는 주문과도 같았다.

무기는 전시하면서, 전쟁에 희생된 존재들은 삭제하다

전쟁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한 사람들을 '국민'으로 단결시키는 데 가장 좋은 도구이다. 게다가 '돈'이 된다. 방위 산업이 발전한 국가는 무수한 죽음을 기회비용 삼아 살상무기를 거래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전쟁은 사람에 의해, 국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전쟁이 비상식적인 폭력과 학살, 존재의 절멸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국가는 전쟁의 부담스러운 부분을 도려내어 전쟁 기억 속에서 고통 받은 존재들을 지우고 전쟁 행위를 영광스러운 신화로만 '기념'해 왔다. 국가의 전쟁 기념은 무기 박람회나 퍼레이드의 개최, 전쟁 기념비의 건립, 호국 의례의 거행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전쟁은 공동체의 유익한 자산으로, 전쟁 폭력은 자국의 평화와 정의를 위한 일 또는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 미화되어 왔다.

20세기경 이념 갈등과 열전으로 몸살을 앓은 한국 역시 전쟁 기념을 국가사업의 하나로 장려해 왔다. 그 결과 '호국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탄생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다루는 전시관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힌다. 이곳에는 고대부터 한반도를 관통해 온 승전의 역사와 대량 학살 무기들이 오락처럼 전시되어 있다. 3층 해외파병실은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한국의 대외 파병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한국군은 '타국에 도움을 건넨 구원자'의 모습으로 추앙된다. 또한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베트남 전쟁 전시 끝부분에 적혀 있다. 이는 전쟁을 벌인 이들의 과오와 책임은 묻지 않은 채 무장의 필요성만을 상기한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신화'처럼 근사하게 그리지만, 실제 전쟁은 고통의 언어로 쓰인 인간의 일이다. 전쟁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전쟁에 연루된 모두의 정신과 신체를 무너뜨린다. 자연을 파괴하며, 불발탄이 터질 미래에 유예된 죽음을 남긴다. 그러나 전쟁기념관 어디에도 전쟁이 야기한 고통은 묘사되어 있지 않다.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 전쟁 폭력에 노출되었거나 학살당한 존재들, 전쟁의 기억을 떠안은 채 이후의 삶을 버텨야 했던 사람들, 비명횡사한 비인간 존재들이 전쟁기념관의 전시에서 제외된 까닭은 전쟁을 '기념'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파병 한국군이 베트남 등 타국의 사람들에게 저지른 학살이나 성폭력 문제는 더욱 기억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기억하소서" 전쟁기념관이 지운 존재들을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에 지워진 '기억'을 덧입혀 보자. 지난 4월 25일 토요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존재를 위한 추모 미사(이하 추모 미사)"가 거행되었다. 강우일 주교와 사제단이 공동으로 집전했고, 여기에 2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추모 미사는 베트남 민간인학살 60주기를 맞아 전쟁이 남긴 상처와 책임의 문제를 성찰하려고 마련되었다. 나아가 가자지구·이란·레바논 등에서 전쟁이 멈추길 기도하는 연대와 평화의 장을 열었다.

"과거의 전쟁으로 스러진 무수한 넋을 기억하고, 인류가 전쟁이라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포기할 수 있길 기도합시다." -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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