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돌에 새겨 만세에 알린다"던 청나라는 사라졌다

지난 22일 서울 출장에서 석촌호수 바로 옆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대학 친구가 이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어 함께 담소를 나눴다. 대학 졸업 이후 지방의 한 이동통신업체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그 친구는 몇 년 전 퇴직을 하고, 그의 처가가 있는 잠실로 거처를 옮겼다. 새로운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그의 재능에 맞는 일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가 근무하는 호텔 손님 중 롯데월드를 방문하는 이들이 많으며,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들이 우리나라의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위해 숙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나는 숙소에 짐을 정리한 뒤 석촌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석촌호수는 동호와 서호로 나뉘어 있다. 서호에는 송파나루공원과 삼전도비가 있다. 삼전도비는 지금의 석촌호수 자리인 삼전도(三田渡)에 세워졌고, 그 지명을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이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나라의 요구로 세워진 석비이다.
비석은 크기가 크며, 앞면에는 만주 문자와 몽골 문자, 뒷면에는 한문으로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삼전도비 머릿돌은 두 마리의 용이 엉킨 모습이다. 받침대는 하나가 더 있는데, 비석을 세우던 중 청나라 사신이 규모가 작다며 문제 삼자 이미 만든 받침대를 버리고 더 큰 것을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버려진 받침대가 지금도 비석 옆에 나란히 남아 있다. 비석의 제목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며, 청 태종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비문에는 청이 조선을 공격한 이유가 담겨 있다. 비문을 읽어보니 글을 쓴 사람의 이름 부분이 훼손되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 글을 쓴 이는 이경석이다. 이경석이 처음 쓴 글은 청나라에서 퇴짜를 맞았고, 이경석은 청의 요구대로 다시 글을 썼다. 이경석은 자신이 글을 배운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이경석이 이 글을 쓴 것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니었으며, 그는 글 쓰는 이로서의 책임을 지고자 했다. 이경석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스승 신분으로 심양에 머물렀고, 인조를 이어 즉위한 효종도 그를 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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