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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은빛이 되었네" 아내의 말에 남편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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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은빛이 되었네" 아내의 말에 남편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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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양철 우산>은 시인이나 작가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철학적 깊이와 문학적 향기가 잘 배합된 시편들이 다수 눈에 띈다.

그중 한 편이다. 어느 날 시인은 아내와 산책 중에 대화를 나눈다. "당신 머리카락이 은빛이 되었네" 하고 뒤따라오던 아내가 먼저 말한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검은 머리도 흰머리도 아니게 된 것이 시간의 어느 사이가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호랑나비가 앉은 무게를 견디느라 풀잎이 조금 내려앉았을 때가 어느 사이는 아닌 것처럼//검은 머리카락이 늙어 은빛이 된 것은 아니다 은빛 머리카락은 요즘 태어난 것들이고 검은 머리카락보다 나이를 먹지도 않았다 흰 머리카락들이 생겨난다면 가장 앳된 것들이 될 것이다

- <은빛 머리카락> 중에서

시인은 엉뚱하거나 이상한 생각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증에 사로잡힌 존재도 아니다. 시인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시인은 뒤따라오던 아내가 한 말에 대하여 "검은 머리도 흰머리도 아니게 된 것이 시간의 어느 사이가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스치듯이 해보는 존재랄까.

이 시의 미덕은 그런 조금은 아리송한(?) 생각조차 "호랑나비가 앉은 무게를 견디느라 풀잎이 조금 내려앉았을 때가 어느 사이는 아닌 것처럼"이라는 멋지고 적절한 시구로 시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준 데 있다. 일종의 문학적 친절함이랄까. 시에서 친절함은 미덕이기는커녕 흠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우아한 친절함은 독자로서 대환영이다.

그런데 "검은 머리카락이 늙어 은빛이 된 것이 아니다"라니? 처음에는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 아닌가.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화자의 말이 다 맞다. "흰 머리카락들이 생겨난다면 가장 앳된 것들이 될 것이다"라는 구절에 와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너무도 당연한 현상인데 그것을 밝혀낸 관찰력이 놀랍다. 시인은 그런 존재다. 당연한 일로 무릎을 치게 하는.

즐거운 발견이랄까. 새로움에 대한 강박증이 아닌 생에 대한 다정함과 차분한 관찰력으로 얻어낸 것들이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화룡점정이 되겠다. "검은 것, 은빛인 것, 흰 것, 한 몸에서 자라는 서로 다른 기후대의 식물"이라니! 시집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맨 앞에 자리한 시다.

핏줄을 몇 떠나보내고 돋보기 안경을 몇 번 바꾸고 나니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입을 잔뜩 벌린 아기새에게 배추흰나비 아기를 물어다 먹이는 어미새의 진저리가 보이고 황토물에 떠내려 가지 않으려고 물풀을 물고 있는 각시붕어 입술의 파리함이 보이고 알을 낳은 후 풀줄기를 붙잡고 미라가 된 암사마귀의 마지막 간절함이 보인다

- <무서운 일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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