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서 하루를 잔 이유, 모두에게 같은 여름은 아니다
하루를 잤습니다. 한여름 반지하방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후 다시 찾아 머물렀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잠시 빌려 체험했다는 말을 쓰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해서 반지하에 사는 이들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루는 하루일 뿐입니다. 그곳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을 견디며, 비 오는 날마다 불안을 안고 사는 시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시민을 처량하게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산다'는 식의 체험기를 쓰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용인이라는 도시 안에 계절이 더 잔인하게 머무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개인의 형편이나 사정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여름이라도 모두에게 같은 여름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여름은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계절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전기요금을 걱정하는 계절입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습기와 냄새, 열기와 막힌 공기를 견뎌야 하는 시간입니다. 같은 겨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집은 추위를 막아주지만, 어떤 집은 냉기를 더 오래 품습니다. 집은 계절을 막아주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어떤 집은 오히려 계절을 더 혹독하게 만듭니다.
반지하가 그렇습니다. 반지하는 단순히 지면보다 낮은 집이 아닙니다. 여름에는 열기와 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겨울에는 냉기가 오래 머뭅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먼저 걱정되고, 날이 더우면 환기와 냉방이 먼저 걱정됩니다. 계절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계절을 받아내는 조건은 집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집에서는 여름이 더 덥고, 겨울은 더 춥습니다.
이 문제를 동정의 언어로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반지하에 사는 시민은 도움을 받아야 할 불쌍한 대상이 아닙니다. 용인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불편한 집에 산다는 이유로 시민의 안전과 존엄이 낮아져서는 안 됩니다. 어느 집에 살든 폭염과 폭우, 한파 앞에서 최소한의 보호는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가 지켜야 할 기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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