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슬픈 일 당하면, 가장 큰 위로는..." 어느 시인의 깨달음

"시 공부하러 온 나는 그때 여고생 그대로인 것 같은데..."
경북 구미역과 금오천 사이,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감성적인 카페와 작은 책방들이 소란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각산마을 '금리단길'이 나온다. 최근 MZ세대의 발길이 이어지며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이 골목 한구석, 카페 '무이'에서는 얼마 전 가슴 뭉클한 소동이 있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오느라 제 이름 석 자조차 잊고 지냈던 동네 할머니 김한순·남주연·변영숙·서태형·손순희·신귀애·이정애·이태숙·임귀선·전정미·홍현옥 11명의 어르신이 모여 시집 <내 이름을 자꾸 써 보게 된다>(2024)를 펴낸 것이다.
처음엔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던 분들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건지 낯설어 머뭇거리던 손끝. 하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구미 각산마을(금리단길) 카페 '무이'에 모인 할머니들은 마침내 자기 안의 수많은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는 게 다 시 아이가"... 붉은 고추 따던 허리를 펴며 얻은 깨달음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나 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오며 정작 자기 이름 석 자는 잊고 살았던 세월. 시를 쓰기 시작하자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옛날 생각들이 저절로 밀려왔다.
구부리고 고추를 땄더니
허리도 아프고
그러다 고개를 들어 향기 나는 쪽을 봤다
사위어질 꽃 향기가 얼마나 달콤한지
세상에나 이런 거구나
힘들고 지치고 어려워도
사위어질 꽃 향기에 다 녹아내린다
- 김한순, <여름날> 중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을 견디며 고추를 따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밀려오던 달콤한 꽃향기처럼, 이분들에게 시는 고된 인생의 굽이마다 숨어있던 소중한 빛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한 번도 강성남인 적 없었던 울 엄마"를 그리워하고,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남겨둔 단감나무와 냉동실에 오랫동안 보관해둔 곶감 이야기를 쓰다 보니 가족 카톡방에서는 "어머니 멋지세요!"라는 며느리의 응원이 전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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