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귀환어부' 고 김정태, 57년 만에 '무죄' 받다
고 김정태님은 1967년 9월, 서해 임자도 앞바다에서 서해 연평도 앞바다까지 나아가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한 평범한 어부였다. 6개월간의 구류를 거쳐 1968년 봄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고향의 품이 아니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이라는 거대한 사법 기구의 톱니바퀴, 그리고 대공분실에서의 지독한 고문과 조작이었다.
1990년 억울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난 김정태 . 그리고 57년이 흐른 2026년 7월 23일 오후 3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제1형사부는 그에게 마침내 '무죄'를 선고했다. 오늘 재판을 통해 서해의 또다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인 고 김정태님의 사연을 따라가보려 한다.
1967년 서해, 그리고 거칠었던 운명의 시작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섬 전체가 파도 소리와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고 김정태님은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어부였다. 1967년 9월 2일, 그는 어선 '신창호'에 몸을 싣고 예년과 다름없이 조업에 나섰다. 그러나 그날 서해상의 안개 속에서 다가온 것은 북한 경비정이었다.
갑작스러운 납북. 함께 조업에 나섰던 신창호 선원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북한 지역으로 끌려갔다. 약 6개월 동안 북한에 구류돼 조사를 받고 교육을 이수한 후, 1968년 3월 23일 그들은 서해가 아닌 동해 묵호항을 통해 귀환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조국의 땅을 밟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들의 귀환은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해야 했다. 혹시 모를 북한의 지령을 받았는지 묻는 수사관들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며 며칠간의 귀환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그 심사를 통과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냉전 체제가 극에 달했던 대한민국에서 납북귀환어부들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간첩'이자 '감시 대상'으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그들의 삶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사찰과 감시의 눈길이 늘 따라다녔다.
영장없는 체포, 불법 구금, 그리고 대공분실의 고문
귀환 후 1년여가 지난 1969년 6월 초순경, 김정태님의 주거지에 전남경찰국 정보과 대공분실 소속 경찰관들이 닥쳤다. 체포 영장 따위는 제시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체포보고서에는 1969년 6월 19일 밤 9시 임자도에서 체포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는 이미 그 이전인 6월 18일과 19일에 작성돼 있었다. 임자도에서 광주에 위치한 전남경찰국까지의 당시 교통 사정과 이동 거리를 감안할 때, 19일 밤에 체포해 당일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했다. 수사기관은 체포 일시마저 가짜로 만들어내며 불법 인신속행을 은폐했던 것이다.
김정태님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6월 26일까지 최소 14일 동안 영장도 없이 밀실에 갇혀 불법 구금당했다. 항소이유서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기록에 따르면, 대공분실에서의 14일은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당시 김정태님이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1970년 작성)의 내용 일부를 보면 그 폭력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은 피고인을 약 20일 동안이나 연금해 갖은 고문을 하면서 억지 자백을 하게 했습니다. 지인들을 앞에 불러놓고 심히 구타하면서 허위 진술을 강요했고, 공포에 질린 그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억지 시인을 했습니다. 검찰에 송치될 때에도 '경찰에서처럼 시인하지 않으면 다시 불려와 큰일 난다'고 협박해 법률 상식이 없는 피고인은 그저 네네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김정태님은 수사기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북괴를 찬양했다', '지인들에게 북한의 우수성을 유포했다'는 식의 허위 자백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라는 거대한 죄명이 평범한 어부의 목을 죄어왔다.
사법부의 방조와 50여년의 침묵
1969년 12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69고2717)은 김정태님에게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임을 호소하고,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치며 억울함을 피력했으나 법원은 그때마다 피해자의 진실을 외면했다. 광주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눈을 감았고, 1970년 6월 30일 징역 7년의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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