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 뚝 떼고 1년 농사 훔친 감독이 노린 것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논에선 모내기가 한창이다. '민우'는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며 면사무소에 다닌다. 또래가 드문지라 퇴근 후엔 친구 '성훈'과 자주 어울린다.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마을 농부들은 농사 걱정에 여념이 없다. 성훈은 아내와 수족관을 운영하며 아버지의 목장 일을 돕는다. 축사에서 소를 돌보는 일은 고단한 반복의 연속이다. 두 청년의 고민과 농민들의 삶은 무한히 반복될 것처럼 보인다. 어느새 하늘은 한없이 높고 파랗다. 햇볕은 나날이 뜨겁다. 여름이다.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을 '훔치다'
영화는 한없이 흐른다. 흘러간다. 강원도 홍천군 어느 마을의 한 해 농사는 수백 년 변함없이 그렇게 계속되었을 테다. 카메라는 하염없이 그 순환의 과정을 기록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민의 감각에서 흐릿해진 지 오래인 농사일의 가치를 소환하는 다큐멘터리인가 하고 관객이 판정할 즈음, 시골에서 보기 드문 청년과 그들의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 이물감이 배어든다. 연기로 보이는 일련의 상황이 기록영상 같은 화면 틈새로 스며든다. 기이한 감각이다.
<지난 여름>은 '드라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분명히 '연기'를 한다. 시나리오도 있고 자연스럽지 않은 강조와 상징들이 확실히 다가온다. 다만 다큐멘터리 풍 요소가 영화 전체에 농밀하게 깔린다. '하이브리드'란 표현이 그나마 적당해 보인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요소를 명민하게 차용(혹은 착취)해 '리얼리티' 구성을 손쉽게 해소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픽션 부분이 기록영상에 올라타는 걸 두고 부정적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어설픈 '재연' 방식을 굳이 취할 필요 없이 실제 현장을 뚝 떼어 붙이며 배경을 설정한다. 그야말로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 급 묘수다. 효율 측면에서 이 거침없는 도전은 뜬금없지만 신선하다. <지난 여름>을 보고 나면 이 선택은 두드러지게 관객의 뇌리에 각인된다. 감독은 무엇을 노린 걸까?
<지난 여름>은 시치미 뚝 떼고 다큐멘터리의 전유물로 인식하던 사실감을 제대로 '훔치는' 데 성공한다. 신고할 생각도 않은 채 눈앞에서 '대도'를 목격하는 기분이다. 사전 준비된 연기자들이 마을 주민과 섞여 들고, 동네 대소사는 자연스레 핵심 배경이 된다. 무엇보다 한 마을 1년 농사가 고스란히 이야기 뼈대로 등극한다. 모내기에서 수확에 이르는 시간은 곧 영화의 시간과 동의어다.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감각
모내기를 마친 농부들은 '농사는 자연이 8, 인력이 2'라며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를 나눈다. 논농사에는 물 대기가 필수다. 하지만 가뭄이 곧 닥쳐온다. 농민들의 마음은 쩍쩍 갈라지는 땅처럼 타들어 간다. 오랜 세월 수자원 부족에 처한 사람들은 물의 사용권을 놓고 다툼을 벌여왔다. 지금도 3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물 분쟁의 기원이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선 정착민과 유목민 집단 사이 사활이 걸린 문제다. 주민들은 익숙한 듯 용수 분배에 관해 대화한다.
가뭄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물려받은 절기 예측도 소용없다. 농부들은 답답한 가운데 원인을 문답한다. 과도한 주변 산림 벌채로 숲이 토양과 지하수를 간직하는 기능이 떨어졌다고 한다. 진작에 나서야 했다는 후회와 더불어 눈으로 목격한 가뭄의 실상도 언급된다. 논바닥이 바짝 말라 올챙이가 떼죽음할 지경이란다. 어쩌면 논이 등장할 때 당연한 듯 배경음악처럼 깔리던 개구리 울음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을지 모른다. 위기감이 팽배하다.
애타는 농심에도 여전히 비 소식은 없다. 이젠 보기 드문 아름드리 거목 아래 정자 그늘에서 할머니들은 짧은 피서를 보낸다. 모내기 땐 수량이 풍성하던 농수로는 바닥이다. 푹푹 찌는 날씨에 민우는 생각이 많은지 집안 산소로 올라간다. 그가 걷는 산길 곳곳에 벌채된 수목의 잔해가 해변에 떠밀려와 뼈대만 남은 고래처럼 참담한 풍경을 더한다. 청년은 산 중턱에서 한눈에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순간 하늘이 어둑해지며 천둥소리가 울린다.
단비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 풍경은 제각각 다르다. 작은 거리와 주택을 뒤덮는 장마의 질감, 논과 대지를 듬뿍 적시는 장마의 체감은 무척 다른 감각으로 관객의 시야에 들어온다. 우르릉 쾅쾅 폭우는 이전의 세상을 정화하듯 뿌린다. 그와 함께 생로병사의 순환이 펼쳐진다. 누군가는 장례를 치른다. 시골 커뮤니티의 경조사 풍경과 세태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마침내 빗줄기가 줄어든다. 절기 변화를 선언하듯 장닭이 울어댄다. 장마는 제 몫을 충실히 해냈다.
이제 농민들은 추수를 이야기한다. 논의 색깔이 바뀐다. 초록색이던 들판이 어느새 누렇게 익었다. 며칠 있으면 수확해도 되겠다며 덕담을 나누던 농부들은 이제 장마 후 산발적으로 내리는 비가 쓸데없다며 '배부른 소리'를 해댄다. 푸념하다가도 이만하면 풍년이라는 음성에는 웃음과 보람이 깃들어 있다. 마을이 지속하려면 순환은 필수다. 장례를 치른 후 유품을 정리하는 이가 뵈지만, 축사에선 송아지가 자라고 학교 운동장에선 아이들이 축구 대결에 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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