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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해' 술 마신다는 아저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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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해' 술 마신다는 아저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

1년 전 이맘때쯤, 동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서 나라가 망했다며 술을 마셔야겠다고 말했다. '나라가 망한 백성처럼 술 마시기'는 내 취미 생활이기도 해서 웃고 넘기려고 했는데, 이 아저씨 하는 말이 덜컥 목에 걸렸다. 그는 "노란봉투법인지가 통과되어서 나라가 망했다"며 "주인한테 대들라고 부추기는 법이 어디에 있냐"고 말했다. 평소라면 별로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어쩐지 내내 입맛이 쓰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어서서 나왔다.

배달호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고3이 되던 해의 정월이었다. 논술 준비 운운하면서 교실에서 학급비로 받아보던 <한겨레21>에 실린 이름이었다. 두산중공업, 65억. 그런 글자들은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죽겠기에 파업한 사람에게 받지도 못할 (혹은 갚지도 못할) 65억 원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시절엔 라디오를 종종 들었는데,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그렇게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김주익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웃기게도 '정은임이 어제 라디오에서 뭔가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라고 수군거리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였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100억 원대의 손배가압류, 80만 원 월급에 대한 압류. 아이들에게 사주지 못한 힐리스 신발. 논술을 앞두고 있어서였을까.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생물인가' 같은 손발 오그라드는 글을 그 인터넷 커뮤니티에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작은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가 됐을 때, 편집장은 매일 아침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로 출근하게 했다. 분향소에는 숫자가 있었고 그 숫자는 너무 자주 바뀌었다. 매일이 부고였다. '눈물이 마를 새 없는' 같은 말은 오히려 사치스러웠다. 모두의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던 것 같다. 그 분향소를 드나들던 사람들 모두. 어영부영 기자 명함 같은 것을 받아 들게 되어서 아무런 준비도 훈련도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 시간에 보탬이 되는 기사를 쓰라"라고 다그치던 편집장이 무서워서 기사를 열심히 쓰긴 했는데, 그 기사가 정말 겨자씨만 한 도움이라도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평택 작은 동네에서 자동차 만들고, 술 마시고 애들 데리고 목욕탕 다니던 아저씨들 수천 명이 갑자기 잘렸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매일 뉴스에 나오고 철탑에 오르고 굴뚝에 오르고 무르팍이 없어지도록 절을 하며 서울 시내를 기어다니고 매일매일 상주가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풍찬노숙을 하며 살았는데, 돌아온 것은 또 갚지도 못할 백억 원대의 손해배상, 돌려받지도 못할 것을 알고도 내는 가압류였다.

노조법 개정, 노란봉투법(파업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그로부터 아주 조금만 나아지자는 노력이었다. 살겠다고 파업한 사람들 돈으로 협박해서 진짜 죽이지는 말자고. 개인으로서 가난하고 허약한 노동자들이 힘과 마음을 모으면 더 좋은 삶을 상상할 수 있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현명하고 따듯하고 그나마 살만한 곳이 되길 바란다고. 적어도 열아홉 살짜리 고등학생이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나' 같은 글을 쓰면서 폼을 잡는 세상이 되진 말자고. 학급비로 받아보던 주간지엔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사람들, 더 좋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리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날 식당에서 입맛이 썼던 건 그런 시간과 생각들이 너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서였다. 그리고 '주인'이라는 말. 그 아저씨도 당연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김치찌개도 사 먹고 소주도 사 먹는 노동자일 텐데. 누구를 왜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하는 속상함.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던 이재명 대통령,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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