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대상 언론인' 명단이라니... 내란집단 'K공작계획'의 증거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로서 공통성을 보여주는 실증적 지표 중 하나가 언론인 강제해직과 검열 및 필화사건이다.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은 1975년 3월 중앙정보부가 광고탄압의 공작 수법으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기자들 113명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기자들 32명을 해직시켰다.
이에 앞서 박정희 정권은 1961년 5.16쿠데타 직후 <민족일보> 간부진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하고 그해 12월 조용수 사장을 사형 집행했고, 시사월간지 <사상계>에 특권층 부정부패를 풍자한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이 게재되고 그것을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이 전재하자 <사상계>를 폐간 조치하고 간부들을 구속했다. 군사독재 정권에 의한 언론탄압의 모든 수법들이 박정희 정권 아래서 실행됐다.
박정희 이후 언론탄압은 그의 친위대 출신으로 80년 내란 수괴 전두환과 노태우에 의해 자행됐다. 전두환은 보안사령관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서 5.18광주민중항쟁을 살상 진압했으며 언론인 해직명단을 결재한 장본인이다. 노태우는 1980년 9월 전두환이 대통령에 오르자 보안사령관과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를 물려받은 뒤 해직 언론인의 취업 금지와 제한, 동향 감시와 사찰을 감행한 책임자였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을 살상진압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는 민중항쟁에 대한 보도 검열과 제작을 거부한 전국 신문과 방송사의 기자, 논설위원, PD, 아나운서 등 933명을 강제해직시켰다. 이중 5.18진상조사위가 2025년 말 파악한 해직언론인 명단은 711명에 이른다.
80년 언론인 해직은 이처럼 전국의 언론사에 걸쳐 광범하게 자행됐다.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내란집단의 핵심 조직인 보안사령부의 정보처 산하 언론과와 정치과 등이 해직자 명단을 취합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도 그 구체적 실행자와 명단 작성 과정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다.
K-공작계획, 보안사 정보처 언론반장이 작성해 전두환 사령관이 결재
1980년 내란집단의 핵심조직인 하나회와 주범 전두환은 정권찬탈과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론 공작의 목적으로 'K-공작계획'을 작성하고 실행했다. 'K공작계획'은 1980년 3월 보안사 정보처 산하 언론반장 이상재 준위가 작성해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결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K-공작계획은 언론사 간부에 대한 회유 공작이 당초 목적인 것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5.18 광주민중항쟁이 폭발하고 내란집단이 이에 대한 언론 통제에 나서면서 검열 및 제작 거부투쟁을 벌인 언론인들을 강제해직 시키는 자료로 이용했다. 5월27일 광주 전남도청에 발포해 시민 학생으로 구성된 항쟁 사수대를 학살한 내란집단은 정권찬탈의 본격 행보로 검열거부 투쟁을 벌였던 언론인의 강제해직에 착수했다.
보안사 정보처 언론과(課)는 내란 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문화문공분과위원회에 해직 대상 언론인 명단을 보내고 국보위 문공분과위는 그것을 내각의 문공부 홍보조정실에 보내 전국의 해당 언론사에 하달했다. 해직 대상 명단은 K공작계획의 실행과정에서 입수한 '정화대상 언론인' 933명이었다. 보안사 언론과의 명단에 따라 '자율정화'라는 미명 아래 대규모 언론인 강제해직이 자행됐다.
이른바 '정화대상 언론인'이라 불리는 명단은 크게 아래 3개 채널의 자료에 바탕해 작성됐다.
첫째, 언론사별로 상주하는 보안사 요원의 정보 자료
둘째, 기자들의 출입처인 정부 부처 등의 공보관실에서 제공한 자료
셋째, 언론사 사주와 경영진이 껄끄러운 기자들을 끼워 넣은 것
1980년 내란 과정에서 언론인 해직을 실행한 조직은 보안사의 정보처 언론과(課) 언론대책반이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들이 언론인 해직의 국가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을 찾은 뒤 구체적 실행자들을 파헤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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