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일 때는 몰랐지... 이 폭락장을 견디고 있을 줄이야

"엄마가 우상향을 말해?"
가족 단톡방에서 내가 무심코 "장기적으로는 우상향이지"라고 답하자 유학 중인 딸에게서 곧바로 답장이 왔다.
"엄마,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야. ㅋㅋ"
나도 한참을 웃었다. 사실 가장 놀란 사람은 딸이 아니라 나였다. 그러게. 내가 언제부터 '우상향'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지난해 하반기였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국 증시가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경제 유튜브에서는 연일 코스피와 반도체, 미국 금리와 연준 이야기가 쏟아졌다. 평생 경제와 주식은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라고 생각했다.
상담실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듣고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 일이었다. 경제 뉴스는 채널을 돌리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고, 주식은 숫자에 밝은 사람들이 하는 일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렵부터 자꾸 궁금해졌다.
'도대체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 이해하고 싶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경제를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제를 모르는 것이 오히려 세상을 방관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코스피와 반도체 ETF부터 아주 조금씩 투자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숫자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다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한 나의 주식계좌는 조금씩 채워져 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미국 증시를 챙겨 보고, 환율을 보고, 세계 정세를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미국 증시부터 확인하고, 잠들기 전에는 경제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특히, 생각지도 않던 미국과 이란의 전쟁 발발로 경제 공부는 지정학적 이슈와 역사까지 연결된 거대한 숙제가 되었다. 물론 거칠게 출렁이는 계좌를 보고 있으면 때로는 심리적 멀미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경제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ETF, FOMC, 점도표, 상방, 우상향… 처음에는 암호 같던 말들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러고보니 자음과 모음의 문자에 익숙한 나의 눈과 귀는 어느새 숫자의 언어에도 길들여지고 있었다.
경제 유튜브에서는 한동안 매일같이 '매파'와 '비둘기파'가 등장했다.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양복 입은 연준 위원들 대신 진짜 매와 비둘기가 회의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생각해 보면 요즘은 사람 이름이 갈수록 잘 잊힌다. 어제 본 배우 이름도, 좋아하던 가수 이름도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헤매기 일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뉴스에서 금리 인상을 운운하는 연준의장 '케빈 워시'라는 이름은 머릿속에 또렷하게 박혀 있다. 문득 '이 사람은 매파일까, 비둘기파일까'를 혼자 상상하는 나를 보면 웃음이 난다. 나도 내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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