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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죄인인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 여성들의 고난사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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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죄인인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 여성들의 고난사

ONP 요약

한국 축구 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상대로 승리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무승부로도 32강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이지만, 홍명보 감독은 비겨도 되는 태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적극적 승리를 다짐했고 선발진에 1~2자리 변화를 예고했다. 손흥민의 조기 교체 논란과 관련해서는 박지성이 감독의 기용권을 인정하면서도 경기 결과 부진 시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감독이 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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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패망 직후, 해외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들어오고 주한일본인들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런데 이 대세에 역행 하는 일본인들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이 있었다. 그중 일부가 부용회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 부용회의 마지막 생존자인 야마구치 마스에가 지난달 8일에 별세한 사실이 지난 23일 언론에 보도됐다.

1929년에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야마구치 마스에는 한국인 유학생과 결혼한 뒤 패망 이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런 다음,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들의 모임인 부용회에서 활동했다. 부용회 회원들을 포함한 '주한일본인 부인'들은 해방 이전과 이후의 한일관계사를 한·일 양국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야마구치 마스에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한국학연구> 1996년 제8호에 실린 김응렬 고려대 교수의 논문 '재한일본인 처의 생활사'는 주한일본인 부인의 숫자를 "1000명 전후"로 추측했다. 13년 전인 1983년에는 그 숫자가 1500여 명으로 추정됐다는 것이 이 논문의 설명이다. 이는 한일협정(1965) 이후에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바람에 한국 측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여성들의 숫자를 뺀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일본 여성들이 한국인과 결혼한 것은 1930년대 후반 이후다. 이때부터 일본 여성과 한국 남성이 일본에서 결혼하는 일이 많아졌다. 야마구치 마스에가 한국 유학생을 만난 것도 이 시기다.

일본 여성과 한국 남성의 결혼

<오늘의 문예비평> 2020년 겨울호에 실린 문화칼럼니스트 임회록의 기고문 '역사의 경계인들 – 재한일본인 여성'은 "일본 내무성의 통계에 따르면 1938년 79만 명이던 조선인들의 숫자는 1944년 194만 명에 이른다"라며 "강제징용된 조선 청년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인 여성과의 결혼을 장려하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또 "징집된 일본 청년들로 인해 결혼 적령기의 일본인 남성이 부족한 것도 일본 여성이 조선인과의 결혼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덧붙인다.

이 기고문에 소개된 아오키 츠네(1928년 생)의 집에는 홋카이도 탄광으로 강제징용된 한국 청년이 하숙을 했다. 아오키의 아버지는 청년의 성실함에 반해 사윗감으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아오키는 1944년에 결혼하고 1945년에 아이를 낳게 됐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이 해방된 그해에 그의 남편은 고향인 전북 진안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아오키의 어머니는 딸의 동행을 반대했다. 하지만, 아오키는 남편도 없는 일본 땅에서 자기 자녀가 한토진(반도인)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는 게 염려돼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한 피난 도중에 세 아이 중 막내인 두 살짜리 아들이 굶어 죽었다. 그런 뒤 가족 모두가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되자, 점잖고 성실했던 남편이 알콜 중독자로 돌변해 아오키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코가 뭉개질 정도로 패는 남편의 폭행을 피해 걸어서 도망갔다"고 위 기고문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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