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로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21박 23일의 환희와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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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월드컵 직관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축구 팬으로서 월드컵 4강은 믿을 수 없는 성과였고, 내게 그 이후의 월드컵을 쫓아다니게 하는 아주 중요한 시발점이었다. 그렇게 나는 2006년의 독일, 2014년의 브라질, 2018년의 러시아와 2022년의 카타르에 있었고,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힘들게 헤치고 오늘까지 왔다. 원정이란 게 매번 험난했지만, 이번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다. 이유를 알아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속상하다.
돌이켜보면 이번 월드컵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월드컵 참여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대한축구협회이기 때문에, 축구협회 내부 분란은 월드컵과 분리되기 어려웠다. 한마음으로 신뢰를 보낼 수 없던 상황에서도 내가 보내고 싶었던 응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뛰는 선수들을 향해 있었다.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그라운드에서 상대국을 응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원정 준비는 느리긴 했지만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4년에 한 번 월드컵을 준비하며 만나는 친구들은 원정 여행을 위한 숙소를 정하고 이동 편을 미리미리 준비했다. 다른 월드컵과는 다르게 '유동 가격제(Dynamic Pricing)'와 티켓 재판매 시스템이 활발하게 연동된 이번 대회는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마저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붉은 악마의 도움으로 간신히 대한민국 예선 세 경기와 32강의 조건부 티켓까지 손에 넣었다.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처음으로 방문하는 멕시코를 즐기는 일만 남아 있었다.
멕시코의 치안 불안과 대표팀 경기력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출국일은 긴박하게 다가왔다. 6월 11일 첫 경기를 위해 6월 9일에 출국했고, 미국 LA를 거쳐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도착하니 어두워져 있었다. 아직 대회가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먼 길을 돌아온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의 첫 숙소에도 대한민국 곳곳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월드컵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렇게 만나고 나니 남아 있던 걱정은 사라지고 첫 경기를 기대하며 쿵쿵대고 있었다.
첫 경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경기장을 찾은 붉은 악마의 숫자는 실망스러웠지만, 다양한 스폰서 티켓과 국제축구연맹(FIFA)의 티켓 구하기 난관을 뚫어낸 관중들이 군데군데 붉은 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중석은 멕시코 유니폼을 입은 현지 관중들이었지만, K-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그들의 응원도 대한민국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월드컵에서 16년 만에 값진 승리를 거머쥐었다. 선수도 응원단도 절대 멈추지 않았고 끝내 이겼다. 수많은 걱정을 한 번에 떨쳐낼 수 있을 만큼의 놀라운 환희였다. 나의 북중미 월드컵도 순식간에 찬란해졌다.
친구들과 함께 과달라하라의 풍부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타코를 충분히 즐겼고,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멕시코 최고 특산품인 테킬라 산지도 방문했다. 테킬라 투어를 즐길 때는 공교롭게도 패배한 체코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일행들과 함께하며, 조금은 거만하게 승자의 여유까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너무 방정맞은 거만함이었지만.
월드컵에서는 불가능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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