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섭 AI 진테제] (메모리) 잠그는 미국, (모델) 여는 중국...한국 선택은
![[안광섭 AI 진테제] (메모리) 잠그는 미국, (모델) 여는 중국...한국 선택은](https://image.zdnet.co.kr/2026/03/14/79f7fcf7fa37e5795608ac25354d9f66.jpg)
[지디넷코리아]지난주 서울에서 막을 내린 ICML(국제머신러닝학회) 현장에서, 필자는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 묘하게 반복되는 동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적잖은 이들이 서울 일정을 마치면 곧장 상하이로 넘어간다고 했다.
7월 17일 개막한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때문이었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ICML 서울의 진짜 무대가 낮의 발표장이 아니라 밤의 네트워킹에 있다고 적었는데, 그 밤의 발걸음은 이미 다음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던 셈이다.그 자체로는 자연스러운 동선이다.
두 행사가 한 주 간격으로 아시아에서 열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시점이었다.
세계의 인재와 관심이 상하이로 흘러드는 바로 그 주,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서는 미 의회가 AI 인프라의 가장 밑단인 '메모리'까지 중국으로부터 걸어 잠그라는 요구를 내놓고 있었다.
한쪽은 문을 열어 사람을 빨아들이고, 다른 쪽은 부품 하나까지 잠근다.
지금 AI 지정학의 축소판이 이 한 주에 담겨 있다.두 도시에서 울린 정반대의 언어먼저 상하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WAIC 개막식 기조연설에 직접 나섰다.
2018년 대회 출범 이후 첫 현장 등판이다.
2024·2025년 개막식은 리창 총리 몫이었다.
국가주석이 무대 중앙에 선 것 자체가 'AI를 기술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다루겠다'는 신호다.메시지는 시종 '개방'이었다.
시 주석은 오픈소스와 개방·협력·공유를 강조하며 "한 나라가 AI를 독점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개발도상국에 향후 5년간 AI 교육 및 세미나 5000회를 제공하겠다는 구체적 약속도 내놨다.
스마트 연산, 오픈소스 공유, 안전 협력 등 8개 분야를 담은 'AI 협력 발전 행동계획'도 함께 공개됐다.지난해 제안에 그쳤던 세계AI협력기구(WAICO)에는 이번에 29개국이 창립 서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1년 전만 해도 가입을 선언한 나라가 하나도 없던 구상이 실체를 갖춘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화웨이는 엔비디아(Nvidia) 고성능 칩 없이도 돌아가게 설계한 대규모 AI 연산 클러스터 '아틀라스 950 슈퍼팟'을 선보였다.하드웨어만이 아니었다.
대회 개막에 맞춰 중국 문샷AI는 2.8조 파라미터 규모의 오픈웨이트(가중치 공개) 모델 '키미 K3'를 내놨다.
프론트엔드 코드 성능을 사람이 직접 비교해 투표하는 한 평가에서, 이 모델은 앤스로픽의 Fable 5와 오픈AI의 GPT-5.6 Sol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종합 성능은 여전히 두 최상위 폐쇄 모델에 뒤진다는 것이 문샷의 자체 설명이지만, 100만 토큰 컨텍스트와 네이티브 비전을 갖춘 이 모델의 가중치 전체가 7월 27일 누구에게나 공개될 예정이다.
상하이가 내건 '개방'은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이제 워싱턴이다.
같은 주,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공화당 위원장인 존 무렌나르 의원과 민주당 조지 화이트사이즈 의원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냈다.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이 중국 CXMT(창신메모리·DRAM 전문)와 YMTC(양쯔메모리·NAND 전문)에서 메모리를 사들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요구였다.
두 의원은 "미국 기업의 모든 메모리 구매는 인민해방군의 이중 용도 기술 개발을 직접 보조하는 셈"이라고 적었다.
계기는 애플이었다.
AI 인프라 투자 급증으로 촉발된 글로벌 DRAM 부족 속에, 애플이 CXMT 메모리를 사들이기 위해 미 정부에 허가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회가 움직였다.같은 주에 세계를 호령하는 G2가 다르게 움직였다.
한 나라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고, 다른 나라는 부품 하나까지 걸어 잠그려 한다.
이 대비가 우연일 리 없다.배경에는 초조함이 있다.
미·중 간 AI 성능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중국 오픈소스 모델의 채택도 늘고 있다.
미국이 첨단 칩을 넘어 메모리라는 하단 부품까지 손을 뻗는 것은, 상단에서 벌려 온 격차가 예전만 못하다는 위기감의 반영이기도 하다.왜 하필 '메모리'인가'주목할 대목은 규제의 표적이 GPU도, 첨단 로직 칩도 아닌 메모리라는 점이다.
AI 시대에 메모리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규모 모델을 학습하고 추론하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넣고 빼야 하고, 그 병목을 푸는 것이 HBM(고대역폭메모리)이다.
메모리는 더 이상 범용 부품이 아니라 AI 연산의 전략 자산이 됐다.여기서 미국의 딜레마가 드러난다.
CXMT와 YMTC는 이미 국방부의 중국군 연계기업 명단(1260H)에 올라 있다.
그런데 이 명단은 거래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원들은 상무부 Entity List(거래제한 명단)에 CXMT를 새로 올리고 YMTC 제재를 강화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제로 YMTC는 2022년 12월 애플이 소싱을 검토하자 곧바로 Entity List에 등재된 전력이 있다.
역사가 반복되는 셈이다.미국 내부도 한목소리가 아니다.
2026년 2월 국방부는 두 회사를 오히려 1260H 명단에서 빼려다, 백악관과 의회 강경파가 개입하면서 1시간 만에 이를 철회했다.
두 회사는 6월 명단에 다시 올랐다.
애플이 지금 허가를 요청하는 배짱을 부린 배경에는 이런 균열이 있다.더 근본적인 역설은 공급 부족의 원인에 있다.
글로벌 DRAM의 90% 이상을 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AI 가속기용 HBM으로 생산 능력을 대거 돌리면서, 정작 범용 DRAM에 공백이 생겼다.
한국 메모리 산업의 'AI 특수'가 역설적으로 애플을 중국 CXMT 쪽으로 밀어낸 구조인 것이다.
중국의 '개방' 서사 역시 순수하지만은 않다.
화웨이가 엔비디아 없는 연산 스택을 자랑한 데서 보듯, 개방의 언어 밑에는 미국 수출통제를 우회하려는 자립 전략이 깔려 있다.개방도 봉쇄도, 결국 시장 진입 전략이다시장 진입 전략을 다뤄 온 필자 관점에서 보면, 상하이와 워싱턴의 언어는 정반대처럼 들리지만 노리는 상(賞)은 같다.
바로 '누가 다음 세대 AI 인프라의 표준과 고객 기반을 쥐느냐'다.중국의 접근은 교과서적인 확산 전략이다.
오픈소스 모델을 저비용 대안으로 뿌려 글로벌 사우스를 유입시키고(획득), 교육 5000회로 그 나라들의 인력을 자국 생태계에 익숙하게 만들며(활성화·종속), WAICO라는 기구로 규칙 제정권을 선점하고(락인), 그 위에 화웨이 하드웨어 스택을 얹어 의존을 수익으로 전환한다(수익화).
무료로 여는 것처럼 보이는 상단 아래에 정교한 유통 구조가 설계돼 있다.
미국이 첨단 모델과 칩의 접근을 통제하는 '신뢰 파트너' 방식으로 진영을 좁게 관리한다면, 중국은 그 반대편에서 문턱을 낮춰 더 넓은 진영을 끌어모으려 한다.
통제로 희소성을 만드는 미국과 개방으로 규모를 만드는 중국, 두 진영의 문법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하나다.'키미 K3'가 이 전략의 축소판이다.
종합 벤치마크에서 1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프론트엔드처럼 사용자가 곧바로 체감하는 영역에서 최상위권에 붙고, 가중치를 열어 자체 호스팅을 허용하는 순간 확산의 조건은 갖춰진다.
결정적으로 K3는 저정밀도 연산을 활용해 다양한 하드웨어에서 돌아가도록 설계됐다.
엔비디아 최신 칩에만 묶이지 않겠다는 방향이다.
개방형 소프트웨어와 특정 하드웨어에 얽매이지 않는 설계가 한 세트로 움직인다.
벤치마크 최상단은 홍보 문구이고, 진짜 무기는 '열려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미국의 봉쇄 역시 같은 게임의 다른 수(手)다.
상대의 부품이 내 진영의 공급망에 침투하는 것을 막고, 그 빈자리를 자국·동맹 기업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실제로 두 의원은 일본·한국·EU와 공동 대응 체계를 갖추자고 제안했다.
개방이든 봉쇄든, 본질은 진영을 나누고 자기 진영의 표준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는 시장 전략이다.'개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중국이 내세우는 '개방'이 곧 'AI의 민주화'를 뜻하는가.
K3의 사양을 뜯어보면 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2.8조 파라미터 모델을 실제로 구동하려면 문샷은 가속기 64개 이상을 묶은 슈퍼노드급 설비를 권장한다.
가중치가 공개된다 한들, 그것을 온전히 돌릴 수 있는 주체는 개인 개발자가 아니라 자체 인프라를 갖춘 국가와 대형 조직이다.이 개방의 실질적 수혜자가 누구인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미국의 폐쇄형 스택에 종속되고 싶지 않지만 스스로 프런티어 모델을 만들 여력은 없는 나라들이다.
이들에게 열린 고성능 모델은 자국 데이터센터 위에 올릴 수 있는 '국가 전략 자산'이 된다.
이른바 소버린 AI(주권 AI) 수요다.
중국의 개방은 바로 이 수요를 겨냥한다.
개발도상국에 5000회의 교육을 약속하고 지역 기구와 협력 창구를 세우겠다는 구상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모델을 열고, 인력을 키우고, 그 위에 자국 하드웨어를 얹는다.
이 설계에서 가장 크게 웃는 쪽은, 열린 모델을 자국 설비에 얹을 수 있는 나라들이다.한국은 수혜자인가, 볼모인가문제는 이 진영전의 한복판에 한국 메모리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 메모리를 막을수록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전략적 가치는 올라간다.
비중국 대체재가 이 둘과 마이크론뿐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한국은 최대 수혜자다.그러나 수혜에는 청구서가 따른다.
미국은 이미 한국을 공동 대응의 파트너로 호명했다.
봉쇄 진영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중국 시장 접근과 진영 선택의 압박이 커진다.
동시에 중국이 개방형 스택으로 글로벌 사우스를 자기 생태계에 묶어 두면, 한국 메모리의 장기 고객 기반도 진영을 따라 갈라질 수 있다.
수혜자의 자리는 언제든 볼모의 자리로 뒤집힐 수 있다.그래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수혜'에 안주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지위를 협상 레버리지로 전환하는 전략적 사고다.
지금의 공급 우위는 영원하지 않다.
CXMT와 YMTC는 첨단 공정에서 아직 선두에 뒤지지만, 대규모 투자로 향후 2~3년 내 범용 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위가 유지되는 이 짧은 창(窓) 동안, 어느 진영에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받을지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면, 한국은 두 강대국이 그은 선 위에 놓인 부품 공급자로 남을 뿐이다.그리고 한국의 고민은 메모리에 그치지 않는다.
개방형 모델과 국산 하드웨어를 한 세트로 묶어 진영을 넓히는 중국의 방식은, 한국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남이 열어 준 스택 위에 올라탈 것인가, 아니면 메모리라는 강점을 지렛대 삼아 우리 몫의 스택을 설계할 것인가.
K3 같은 오픈 모델을 활용하는 국가 대열에 조용히 합류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를 무기로 표준 설계에 참여할 수도 있다.
부품 공급자에 머물지, 판을 짜는 당사자가 될지는 이 선택에 달려 있다.ICML에서 상하이로 향하던 연구자들의 발걸음이 말해 주듯, AI의 무게중심은 계속 이동한다.
개방과 봉쇄가 부딪히는 이 국면에서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쥔 것으로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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