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해야 할 일이 수천수만 가지예요" '인지노동'은 왜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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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일 떡이 상에 오르기까지 여성의 머릿속에선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까. 가족 내 '인지노동'(cognitive labor)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이었다. 생후 4개월의 여아를 양육하는 대학원생 강씨를 한 세미나에서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가 내게 말했다.
"저 혼자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정말 수천수만 가지예요."
그녀는 인지노동에 관해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자녀의 생후 100일이라는 이벤트를 준비하며 '양가 일정 조율'부터 '아이 사진 업체 선정', '식당 예약' 등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알아보고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호텔 돌상처럼 큰 행사를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떡 하나를 고르는 것조차 업체 검색부터 예약까지 다 나의 일이라니'. 그녀는 모든 고민과 결정이 자신의 몫이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숨 가빴던 준비 기간이 끝나고 그녀는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이런 인지노동의 고됨은 비단 특별한 날을 앞두고 발생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욕실 선반의 휴지와 샴푸가 떨어지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일부터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미리 알아보고, 아플 때 데려갈 병원을 찾아보는 일까지. 집마다 그 일의 종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다수의 이성애 가구에서 여성의 몫이 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일들을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눈에 잘 띄지 않고 흔히 말하는 집안일의 범주에도 좀처럼 고려되지 않으니 말이다. 나의 연구 관심은 가사와 돌봄의 와중에 벌어지는 이런 '수천 수만 가지의 머릿속 일들'에 대한 것이었다.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노동이다: '주인의식'의 차이?
우리집 간장이 언제 떨어질지, 양파망에 양파가 몇 개나 남았는지, 양가 부모님 생신이 언제며, 아이 학교 시험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이런 걸 속속들이 꿰고 있는 여성을 두고 흔히 사람들은 살림꾼이라거나 엄마 노릇을 잘 한다고 한다. '노동'이라고 말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여성의 특별한 능력이나 모성애로 여겨지기 쉽다. 그 어떤 여성도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등장한 개념이 '인지노동'이다.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가사와 돌봄에 관한 일들을 학자들은 모성적 사고, 가구관리 등으로 불러왔으나, 2019년 사회학자 다밍거(Allison Daminger)가 이를 '인지노동'이라 명명하며 육체 및 감정노동과 구분되는 가사노동의 한 차원임을 분명히 했다.
인지노동은 이렇게 정의될 수 있다. 가족과 관련된 '필요를 예상해서, 선택지를 알아보고,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모든 일들'. 예컨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자녀의 놀잇감을 고른다고 할 때, 어떤 장난감이 필요한지 예상하고, 찾아보고, 선택하고,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장난감들을 어떻게 할지(나눔을 할지 버릴지 등) 결정하는 전 과정이 인지노동이다.
잘 보이지 않고 많이들 모르는 탓에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실행노동보다도 훨씬 젠더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경향은 내가 실행한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사회건강연구소의 지원으로 '가족 내 사회적 재생산의 인지감정 노동과 건강'(2025)을 수행했을 때 미취학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41명을 개별적으로 심층면담하였다. 나는 면담 참여자들에게 자녀 돌보기, 청소, 쇼핑 등으로 구분된 가사와 돌봄에 관한 아홉 가지 영역의 카드를 주고, 부부 중 누가 더 주도적으로 그 일을 맡고 있는지 분류해 달라고 했다.
대다수의 가구에서 남녀 모두 남편보다 아내가 주도하는 영역이 더 많다고 분류했다. 또한 여성이 담당하는 영역은 주로 '물류와 일정 관리', '쇼핑 및 구매'처럼 챙겨야 하는 일들이 불어날 수 있는 영역들이었던 반면, 남성이 주로 담당하는 영역은 '자동차 점검'처럼 할 일이 비교적 명확하고, 주기가 길며 예상이 덜 필요한 영역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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