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산골에서 반달곰 돌보는 2030 여자들, 도대체 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화천에서 곰 생츄어리를 운영하는 이들이 있다. 프로젝트 문베어는 사육곰 농장에 있던 반달가슴곰들을 인수해 이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주는 사업을 이어왔다. 철창으로 막힌 3.3㎡ 남짓 우리에 갇혀, 때가 되면 쓸개즙을 빨리고 죽고 나선 발바닥까지 잘려 나가는 그 비참한 곰을 구해 삶을 허하려는 작업이다. 한국 최초 야생동물 보호구역, 곰 생츄어리 이야기다.
영화 도입부, 문베어 관계자들이 곰 농장 주인과 마주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꽤 멋스럽게 지어둔 쾌적한 집 거실에 앉아 주인은 곰도 가축들처럼 사육과 도축까지 법으로 정해지면 좋겠다고, 곰 부산물엔 콜라겐도 많이 들었고 몸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건넨다. 누군가는 정감 있고 유쾌하다 여길 법한 그 목소리를 마주 앉은 활동가들이 어떻게 들었을지 생각한다.
최태규, 그러니까 문베어를 이끌어온 대표이자 수의사이며 활동가인 그가 "그렇게 몸에 좋은가요?"하고 되묻는 모습을 이 장편 다큐멘터리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까?"라는 감정 섞인 외침 대신에, 조금도 감정이 들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되묻는 그 모습이 많은 걸 말해준다고 여긴다.
기자로 일하며 마음 붙인 사건들을 여럿 만났다. 누군가가 죽고, 심하게 다치고, 부조리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엮인 사건이 적잖았다. 어쩌다 이들 사건의 원인 제공자와 단 둘이, 혹은 여럿이 마주 앉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중 꽤 많은 이들이 제 윤리와 도덕에선 잘못이랄 게 전혀 없다고 항변하곤 하였다. 이들과 마주할 때면 내게 감정이란 게 본래 없었단 듯이 상대와 사건을 대하게 되고는 하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두 세계의 낙차를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일 테다.
엄연히 실재하는 무례와 무심함, 또 노골적인 비열함과 사악함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고 지속하게끔 하는 건 분노가 아니라 포기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내겐 지극히 사무적인 이 영화의 도입이 각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이야기다.
부활한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첫 상영
지난달 서울 홍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228회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왕민철 감독의 동물 3부작 마지막 작품이 상영됐다. 지난해 서울시 예산삭감 결정으로 227회 쇼케이스를 찾은 관객 앞에서 폐지를 공식 발표했던 행사다. 시민사회 반발로 예산이 극적 복원되며 부활을 알린 뒤 맞은 첫 상영이다.
<동물, 원> <생츄어리>에서 이어지는 왕민철 감독의 연작은 독립영화의 카메라가 마땅히 머물러야 할 우리 사는 세상 귀퉁이의 좀처럼 조명되지 않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떤 생명들의 고통과 소멸을 전제로 우리 세계가 서 있다면 우리는 그를 적어도 알고 있긴 해야 할 것이 아닌가(관련기사: 한 해 1500마리 안락사, 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 https://omn.kr/291n6 ).
<동물, 원>은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거점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을 다뤘다. 동물을 사오지 않고 운영하는 동물원으로, 찾는 이의 즐거움보다도 동물들의 삶을 우선하는 모습이 그와 같은 세계를 알지 못한 관객에게 의식의 확장을 이끌 법하다.
<생츄어리>는 야생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된 동물을 구조해 치료한 뒤 생태계로 되돌리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또 곰 생츄어리 사업을 벌이는 프로젝트 문 베어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야생동물의 생존을 부수어내는지 영화가 내보이고 책임을 묻는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결국 생츄어리로 향한다. 곰 농장에서 인수해 온 곰들이 사는 화천의 곰 생츄어리에서 감독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전하려 하였을까.
곰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영화 내내 두드러지는 건 곰 생츄어리를 책임지는 비상근 1명을 포함해 5명의 활동가다. 20대에서 30대까지의 미혼여성으로 보이는데, 강원도 화천에서도 외진 산골에서 곰들을 돌보며 산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 그러니까 일어나 잠들기까지 이들이 하는 일과를 보여준다.
곰들에게 밥을 주고, 우리를 청소하고, 곰이 즐길 법한 놀거리를 넣어주는 게 이들의 일이다. 문베어의 활동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후원자와 예비후원자에게 다가서는 일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귀여운 외양에도 화가 나면 사람을 찢을 수 있는 곰들이 아닌가. 혹여 있을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해 안전훈련까지 철저히 실시한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여느 동물원 사육사의 모습과도 얼마 달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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