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커버리지1건1개 미디어
정치
진보 성향

시고 단단한 '구스베리'를 먹으며 떠올린 소설

오마이뉴스
조회 0
시고 단단한 '구스베리'를 먹으며 떠올린 소설

오늘 아침, 정원 한구석에 자리한 구스베리 덤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가시 돋친 가지 사이로 작은 열매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아직 덜 익어 반쯤 투명한 연둣빛인데, 아침 햇살에 비춰 보면 안쪽으로 가느다란 잎맥 같은 줄이 선명히 비친다.

열매를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 본다. 꽤 단단하다. 포도처럼 무르지도 않고, 앵두처럼 탐스럽지도 않다. 어딘가 고집스럽지만, 가만 보면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는 열매다.

구스베리를 키우기 시작한 건 영국에 살던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파머스 마켓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동그랗고 귀여운 열매, 그리고 식탁 위에서 자주 맛보았던 달콤한 잼의 기억을 품고 이곳 강화도 정원에 두 그루를 심었다. 첫해에는 거의 따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도 봄이면 어김없이 작고 흰 꽃이 피고, 그 자리에 초록 구슬 같은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된다.

그러다 처음으로 잘 익은 열매를 입에 넣은 날, 나는 뜻밖에도 백 년도 더 전에 쓰인 짧은 소설 한 편을 떠올렸다. 안톤 체호프의 <구스베리>다.

<구스베리>는 안톤 체호프의 작품 중에서 조용하고, 짧은 이야기다.

들판을 걷던 두 친구 수의사 이반과 교사인 부르킨은 비를 피해 친구 알료힌의 영지에 들른다. 이반이 자기 동생 이야기를 꺼낸다. 동생 니콜라이는 평생 한 가지 꿈을 품고 살았다. 시골에 자기 땅을 사서, 그 마당에 구스베리를 심는 것. 그 소박한 꿈을 위해 그는 궁색하게 살며 먹을 것을 줄이고 아내에게도 궁핍한 생활을 강요하며 한푼 두푼 돈을 모았다. 결국 아내는 그런 삶 속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다.

마침내 동생은 땅을 산다. 강은 있었지만 물은 커피색으로 탁했고, 주변에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어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땅이었다. 그래도 그는 구스베리 스무 그루를 심었다.

형이 찾아간 날, 동생은 처음 수확한 구스베리 열매를 먹으며 더없이 행복해한다. 평생 꿈꾸던 삶이 마침내 자기 손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은 그 열매를 먹어 보고 안다. 그것이 아직 덜 익고 시다는 것을. 하지만 동생은 연신 "맛있다"고 했다.

그날 밤에도 동생은 잠에서 몇 번이나 깨어나 접시의 구스베리를 집어 먹는다. 형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앞에 있는 것이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품어 온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체호프는 바로 이 지점을 응시한다. 만족한 얼굴로 구스베리를 먹는 동생을 바라보며, 형은 그 유명한 구절을 남긴다.

전체 내용보기 ...

전문 보기

이 뉴스,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나요?

첫 반응을 남겨보세요

로그인하면 감정 반응에 참여할 수 있어요.

관련 뉴스

관련 뉴스 제보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