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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 더욱 특별했던 종묘에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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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0일) 서울 종묘에 다녀왔다. 오래 전 종묘를 찾은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 머릿속의 종묘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1> 에 실린, 하얗게 눈 덮인 풍경 안에 있었다. 그 모습이 극도로 고요하고 차분하여 나도 모르게 숨죽이게 되는 풍경. 그 넓은 공간에 소리없이 쌓이는 눈,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 하얗게 축적되어 그려내는 깊은 침묵, 그리고 장엄함.

겨울 어느 날, 눈이 내려 정전의 지붕이 하얗게 덮일 때 종묘는 거대한 수묵 진경산수화와 같은 명장면을 연출한다. 건축으로 이런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했던, 그 정전의 지붕과 월대가 온통 눈에 덮여 흰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1>에서

책 속 한 페이지를 차지하며 펼쳐진 눈 덮인 종묘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던 기억이다. 알 수 없는 위로와 평화가 가슴 속 깊이 전해져서 그 페이지를 찰칵 담고서는 가끔 꺼내보곤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아니 운좋게도 눈이 오거나 비 오는 날 서울에 있다면 종묘를 보리라' 생각했다.

비 오는 날, 종묘

지난주 내내 때이른 더위에 조금은 지쳤는데, 반갑게도 토요일은 제법 세찬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였다. 덕분에 30도를 웃돌던 기온이 최고기온 25도에 그칠 거란다. 주말을 시작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토요일 아침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거기도 비 오죠?"

"응. 비 오니 너무 좋다. 빗소리도 좋고..."

"나이가 드니 비가 더 좋아지네요. 차분하고 고요하니..."

주말 이른 시간에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라 '무슨 일 있나 '하고 놀랐는데, 비 얘기로 시작해 이런 저런 근황들이 이어졌다. 그렇다. 날씨는 그날의 마음까지 바꾼다. 하물며 풍경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긋지긋한 축농증 진료 차 서울에 왔는데, 토요일 종일토록 비가 내릴 거란다. 그것도 제법 세찬 비가. 이때다. 우산을 받쳐 들고 종묘를 보리라. 비님 오시니 사람들은 적을 테고. 비 오는 날 종묘는 어떤 모습일까. 하얀 눈이 내려앉은 그 고요와 침묵과 장엄함을 그대로, 아니 또 다른 종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촉촉하게 젖은 거리, 건물들, 바짓가랭이를 적시는 빗줄기, 싱그러운 유월의 가로수. 비에 함박 젖은 도시는 시원하고 운치가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종묘를 향해 난 길 양 옆으로 밤 동안 늦도록 꽤나 어수선했을, 아직 깊은 잠에 빠진 상가들을 스치며 걸었다. 그 사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국물에 꼬치 어묵이 잘 불어 맛있어 보이는 허름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남편은 "나중에 나오는 길에 하나 먹자"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비 오는 날 제맛이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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