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로 버려진 새옷들...옷에 달린 QR 코드를 찍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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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부터 유럽연합(EU)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대기업은 팔리지 않은 의류·신발·액세서리를 소각하거나 매립할 수 없게 된다. 재고 처리의 가장 손쉬운 해법인 '조용한 폐기'가 법으로 금지된다. 나아가 2027년 중반부터는 섬유·의류 제품에 디지털 제품 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이 도입돼, 실 한 올의 원산지부터 염색 공정, 재활용 가능성까지 전 생애주기 정보가 QR코드 스캔 한 번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른바 '투명한 옷'의 시대가 열린다.[1]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섬유·패션 분야에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상품을 EU에 수출하고 있으며,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공급망에도 깊숙이 편입되어 있다. 그러나 대응 속도는 더디다. 일부 대기업은 "EU의 세부 가이드라인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전략 논의 자체를 미루고 있고, 스타트업 생태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제도적 지원이 충분치 않다.[2]
가장 오염된 산업
패션산업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오염된 산업으로 꼽힌다. 유럽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EU 내 1인당 섬유 소비량(의료, 신발, 침구류 등 가정용 섬유)은 2019년 17kg에서 2022년 19kg으로 증가하였으며, 버려지는 의류·신발은 2020년 기준으로 연간 약 12kg이다.[3] 유럽의회에 따르면 EU에서 연간 1260만 톤의 섬유 폐기물이 발생하며, 이 중 의류·신발류만 520만 톤에 달한다.[4]
심각한 것은 입지도 않은 옷이 버려지는 현상이다. 유럽환경청(EEA)이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매년 출시되는 섬유 제품의 4~9%, 즉 26만 4000~59만 4000톤이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채 폐기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최대 560만 CO₂ 환산톤에 달한다. 스웨덴의 순 탄소 배출량에 근접한 수준이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구매된 의류의 약 20%, 신발의 약 30%가 반품되고 있으며, 이 중 22~44%는 새로운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폐기된다.[5]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헌 옷 쓰레기 산은 이 문제의 상징이다. BBC가 2022년 현지 취재를 통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칠레에 수입되는 의류의 절반 이상이 아타카마 사막의 불법 투기장에 버려지며, 위성 사진으로 확인될 만큼 거대한 이 쓰레기 더미에는 미국·유럽·아시아에서 수출된 재고 의류가 가격표를 단 채 산처럼 쌓여 있다.[6] 이 같은 문제는 서아프리카에서도 반복된다. 가나 아크라의 칸타만토 시장에는 매주 약 1500만 벌의 중고 의류가 유입되지만, 이 중 약 40%는 판매되지 못한 채 폐기된다. 또한 상당량의 폐기 의류는 적절히 처리되지 못하고 하천과 해안으로 유입되며 환경 오염을 심화하고 있다.[7] EU의 ESPR은 바로 이 관행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ESPR이란?
EU의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 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Regulation)은 2024년 7월 18일 발효된 EU 순환경제 입법의 핵심에 해당한다.[8] 식품·의약품 등 일부를 제외한 EU 역내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물리적 제품에 적용되며, EU 역내에서 판매 또는 사용되는 제품을 공급하는 한국 등 역외 기업도 ESPR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ESPR의 핵심은 두 가지 요건이다. 첫째, '에코디자인 요건'으로, 제품의 내구성·재사용가능성·수리용이성·환경발자국 등을 개선하는 성능 요건(PerformanceRequirements)과 이 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정보 요건(InformationRequirements)으로 구분된다. 둘째, 이 두 요건을 디지털로 집약한 '디지털 제품 여권(DPP)'이다. 아울러 미판매 제품 폐기 금지 조항이 포함되어 재고 처리 방식 전반을 규율한다.[10]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와 디지털 제품 여권(DPP)
이에 따라 의류·액세서리·신발을 판매하는 대기업은 2026년 7월 19일부로 미판매 제품 폐기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대기업은 직원이 250명 이상이거나, 직원수와 무관하게 매출이 5000만 유로를 초과하면서 총자산 4300만 유로를 초과한 기업을 말한다. 중간 규모 기업(직원 50~250명)은 2030년 7월 19일부터 적용된다. 소기업과 영세기업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11][12][13]
다만 안전·위생·심각한 손상 등 규정이 정한 예외 사항에 한해 폐기가 허용되며, 이때 사유별 증빙 자료를 5년 보관해야 한다.[14]
공시 의무도 부과했다. 이 같은 유형의 제품을 파는 대기업은 미판매 제품 폐기에 관한 정보를 홈페이지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표준화한 형식으로 공시해야 하며, 2025년 자료를 기준으로 2027년 2월부터 의무가 발생한다.
유럽 수출 기업에게 이 조항의 파급력은 심대하다. 기업은 재고 의류를 소각·매립하는 대신 기부·재판매·재활용·업사이클링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재고 관리 시스템과 공급망 전반의 혁신이 불가피해진다. 옷의 '전자 신분증'인 DPP 보유 의무화 또한 새로운 부담이다.
DPP는 제품의 기술적 성능, 지속가능성, 순환성, 법규 준수 등 정보를 QR코드나 NFC 태그 등 데이터 캐리어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도구다. ESPR 제9조는 제품을 EU 시장에 내놓으려는 제조사에 DPP 보유를 의무화하여 제품마다 고유한 디지털 신원을 부여한다. 섬유·의류 분야 DPP의 구체적 요건을 담은 위임법은 2027년 채택될 예정이며, 기업의 실제 의무 준수 시점은 2028년 중반으로 예상된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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