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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화가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나라와 비교해 보니

오마이뉴스
한국 원화가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나라와 비교해 보니

원화는 왜 이렇게 약한가. 이 질문에 정부와 시장이 공유해 온 답이 하나 있다. 미국 주식을 사러 떠나는 서학개미, 그리고 한국 주식 비중이 한도를 넘을 때마다 기계적으로 파는 외국계 자금. 요컨대 달러를 사고파는 수급이 범인이라는 진단이다.

이 진단은 정책까지 낳았다. 지난 5월 상장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을 미국 수준으로 키우면 서학개미의 달러가 돌아와 원화가 안정된다는 논리 위에서 태어난 상품이었다. 결과는 정부가 스스로 판정했다. 증시 변동성 확대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해 출시 50일 만에 신규 상장을 중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그 앞 단계다. 처방의 근거였던 진단 자체는 맞았는가.

미리 말해두자. 서학개미와 외국인 매도가 환율과 무관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흐름은 실재하고, 단기적으로 환율을 밀어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같은 흐름을 가진 이웃 나라와 비교하는 순간, 이 통념은 원화 약세의 핵심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필자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6월부터 이달까지 13개월여의 원화와 대만달러 일별 데이터를 직접 비교해 검증했다. 이는 현 정부 기간의 환율을 평가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이 통념을 하나씩 검증해 보자.

파는 사람이 많아서인가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개인이 미국 주식을 사니까 원화가 약해진다. 정말 그런가. 그게 이유라면 대만달러도 흔들려야 한다. 올해 외국계 자금은 대만 주식도 기록적으로 팔았다. 하루 1890억 대만달러라는 사상 최대 매도가 나왔고, 매도는 TSMC에 집중됐다. 주가가 급등해 보유 비중이 한도를 넘은 글로벌 펀드가 기계적으로 파는 사정은 한국과 대만이 같았다.

그런데 결과가 다르다. 아래 그림이 이 기간의 기록이다.

그림이 말해주는 사실은 단순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원화의 일상적 출렁임은 연 9.2%로 대만달러의 5.6%를 크게 웃돌았고, 날짜별로 짝지어 비교하면 평균 1.86배였다. 심지어 세계 모든 통화의 상대가 되는 달러 자체의 출렁임(달러인덱스 기준 5.9%)보다도 컸다.

더 결정적인 것은 주가와 환율의 연결이다. 이 기간 코스피가 하루 3% 이상 급락한 날은 25번 있었다. 그때마다 원화는 같은 날 평균 0.38% 절하됐다. 통계적으로 뚜렷한 반응이다. 대만은 어떤가. 3% 이상 급락일이 8번 있었지만 대만달러의 반응은 통계적으로 뚜렷하지 않았다. 같은 나쁜 소식이 한 나라에서는 그날로 환율에 새겨지고, 다른 나라에서는 새겨지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 대만에서는 외국인이 주식을 판 돈이 곧바로 달러로 바뀌어 나가지 않는다. 외국인이 월간 사상 최대로 대만 주식을 판 지난 6월에도, 대만 중앙은행 집계에 따르면 대만의 외환수지는 오히려 116억 달러 순유입이었다. 판 돈의 상당액이 대만달러 예금에 그대로 머물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만 중앙은행은 환율이 흔들리면 한국 당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개입해 막는다. 요컨대 파는 것은 계기일 뿐이다. 그 계기가 환율까지 흔드느냐 마느냐는 나라의 구조가 정한다.

나가는 돈이 많아서인가

"그래도 한국은 개인들이 해외로 들고 나가는 돈이 워낙 많지 않으냐"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규모를 재 보자.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는 한 달 151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당국이 증권사들의 해외투자 마케팅을 중단시킬 만큼 흐름은 거세다. 그런데 대만에는 이보다 큰 상시적 유출이 있다. 대만 생명보험사들은 굴리는 돈의 70%가량을 아예 해외에 두고 있다. 환율 변동에 그대로 노출된 몫만 대만 국내총생산의 4분의 1 규모로 추산된다. 나가는 돈의 크기로 따지면 대만이 한국 이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대만달러가 더 안정적이다. 유출이 많아서 약하다는 설명은 여기서 무너진다.

차이는 돈의 양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나가느냐다. 대만의 해외투자는 큰 보험사 몇 곳이 규칙적으로 실어 나른다. 그래서 정부가 보험사 관련 규정 하나만 고쳐도 외환시장의 달러 흐름을 조절할 수 있다. 이 수단이 너무 강력해 '뒷문 환율 관리'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연 1500억 달러로 불어난 무역흑자 덕에, 대만의 해외투자는 나라 안에 넘치는 달러를 내보내는 배출구 역할까지 한다.

한국의 유출은 수백만 개인이 만든다. 환율과 수익률에 따라 한꺼번에 몰렸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최근 순매수 1위 종목이 미국 반도체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초고위험 상품일 만큼 그 성격도 공격적이다. 이 흐름 앞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증권사에 광고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전부다. 문제는 유출의 크기가 아니다. 정부의 손이 닿는 유출이냐, 닿지 않는 유출이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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